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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노재현의 시시각각

‘박정희 기념관’ 왜 비틀거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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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나는 우리나라가 수많은 두려움을 극복하고 일어선 나라라고 생각한다. 두려움은 다섯 가지로 정리된다. 망국(亡國), 전쟁, 절대 빈곤, 억압, 그리고 상대적 빈곤의 공포다. 나이대에 따라 체험한 공포의 종류와 강도가 다르다. 망국의 공포는 70대는 되어야 되살릴 것이고, 한국전쟁도 60대 이상이라야 무서움을 알 것이다. 50대 이상이라면 절대 빈곤을 진저리 치게 겪은 적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아래 세대에게는 억압과 상대적 빈곤의 공포가 다른 공포보다 더 실감날 것이다.

결과론이라 해도 좋다. 나는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이 그 시대의 ‘공포’와 맞서 왔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우리는 복 받은 국민이다. 이승만의 독립운동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로의 건국,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국민을 절대 빈곤에서 해방시킨 박정희, 인권과 자유 신장에 공헌한 김대중과 노무현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명박 정권의 탄생에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시점에 대두된 상대적 빈곤에의 불만이 크게 기여했다고 본다.

이렇게 보면 역대 한국 대통령들은 연구하거나 배울 것투성이다. 자기 세대의 ‘공포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의 과제가 무엇인지 다투는 현상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다투더라도 과거 경험을 제대로 정리하고 성찰할 여건은 갖추어 놓고 다퉈야 한다. 이제 60년을 갓 넘긴 대한민국 역사조차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자기 세대의 직접 체험에만 의지해 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통령 기념관만 해도 그렇다. 제대로 된 이승만 기념관이 있는가. 7년째 표류하고 있는 박정희 기념관은 또 어떤가. 대통령 기념에 관한 한 한국은 ‘족보가 거꾸로 선’ 나라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기념관 건립을 모색하다 포기했다. 서거 후에 다시 추진 중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연세대의 김대중도서관, 광주의 김대중컨벤션센터처럼 기념관 성격을 겸한 시설들이 이미 있다. ‘제2 김대중컨벤션센터’도 논의 중이다. 올봄 경남 거제시에서는 ‘김영삼 대통령 기록전시관’ 기공식이 열렸다. 그 외 대통령들의 기념 사업은 지지부진이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는 해도 너무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기념관 건립을 공약하고, 당선 후 1999년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를 발족시킨 것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지금은 기념관 명칭조차 제대로 정하지 못한 채 둥둥 떠다니고 있다. 기념사업회와 정부·서울시, 그리고 박정희를 옹호·기피하는 측이 뒤엉켜 10년간 드잡이한 결과다. 특히 노무현 정부 당시 행자부가 국민모금 부진을 핑계로 지원금 회수에 나서면서 결정적으로 비틀거렸다. 정부 지원금 잔액 170억원을 회수하고 김대중도서관에는 기념사업비 조로 60억원을 지원하기로 한 2005년 4월 12일의 국무회의 결정이 가장 상징적이다.

현재 박정희 기념관 부지는 서울 상암동의 외진 택지개발지구에서 터파기 공사를 하다 만 채 7년간 방치돼 있다. 명칭도 ‘박정희 기념·도서관’이라는 희한한 이름으로 변형됐다. 시립 ‘도서관’이 주된 목적인 탓에 ‘기념’은 뒷전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박정희 기념관 졸속 추진 반대 시민연합’의 김현경(46) 대표는 “건물 연건평 1540평 중 도서관이 480평, 기념관은 360평에 불과한데 도대체 18년 통치사료를 그 면적에 어떻게 전시하라는 말인가”라며 “주차 대수가 15대에 불과한 외딴 장소에 기념관을 만든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하소연한다. 박 전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씨도 “여론조사마다 아버님이 가장 일을 잘한 대통령으로 꼽히지 않느냐”며 “그런 국민의 마음을 받아들여 떳떳하게 추진할 일이지 왜 눈치들을 보는지 모르겠다”고 안타까워했다.

우선 박정희 기념관부터 새 장소를 물색해 처음부터 다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일부에서 굳이 우긴다면 박정희 시대의 ‘과(過)’도 함께 전시하라. 나는 그렇게 해도 박정희의 커다란 업적에 별 흠이 가지 않는다고 믿는다.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