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이 고통 생각하면 … 범인 처벌 약하다” 민심 폭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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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청와대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댓글.

여덟 살 여아를 성폭행해 영구 장애를 입힌 ‘나영이 사건’의 범인 조모(57)씨에게 징역 12년형이 선고된 데 대해 비난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이른바 ‘나영이 어머니 글’이 올라와 큰 반향을 불렀다. ‘엎드려 읍소합니다’란 제목의 글은 “병원에서 나영이의 참혹한 모습을 보니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며 범인에게 더욱 강한 처벌을 내려줄 것을 호소했다. 이 게시물은 전날 새벽부터 블로그와 카페 등을 통해 빠르게 번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제3자가 쓴 글로 밝혀졌다. ‘나영이의 고통을 생각하면 범인에 대한 처벌이 약하다’는 댓글이 잇따라 올랐다. 조인스닷컴에서 네티즌 이모씨는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시켜 평생 죗값을 치르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네티즌 김모씨는 “나영이가 평생 지고 가야 할 육체적 피해와 고통에 비해 범인이 감옥에서 살아야 할 12년은 너무 짧다. 별도의 형량을 추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대형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조씨에게 더 큰 벌을 내리거나 성범죄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인터넷 청원 운동이 전개됐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개설된 ‘아동 성폭행은 살인행위! 법정최고형+피해보상까지 하라’란 청원란에는 30일 오후 30만 명이 넘는 서명이 몰렸다. 이 청원란은 내년 3월 31일까지 50만 명의 서명을 받는 것을 목표로 25일 개설됐지만 불과 6일 만에 목표의 절반을 넘긴 것이다.

일부 개인 블로그 등에서는 조씨의 실명 등 신상정보가 공개되기도 했다. 조씨의 신상정보는 법원 판결에 따라 거주지 관할경찰서 내 전산망을 통해 향후 5년간 조회할 수 있으며, 지난 4월 개정된 청소년 성보호법 개정안은 인터넷상으로 조회할 수 있도록 했지만 시행되려면 내년 1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검찰과 법원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살인 사건도 징역 12년이 선고되는 일은 드물고 강간·상해의 경우 징역 12년이 선고된 전례가 없었다”며 “이번 형량이 결코 가볍지 않은데 국민들의 법 감정과 다른 것 같아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술에 만취한 상태여서 ‘심신미약’이라는 이유로 형이 감경됐다고 하나 이는 양형에 크게 고려되지 않은 부분이고, 피고인의 행동에 참작할 여지가 있다는 뜻도 아니다”고 말했다. 대검 조은석 대변인은 “이미 사건이 확정된 상태이고 앞으로 아동 범죄와 성폭력 범죄에 대해서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항소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법원의 선고 관행에 비춰 심신미약 감경으로 징역 12년 선고면 중형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항소하지 않았다고 검찰의 책임을 묻는 것은 법리적으로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이다.

◆나영이 어머니, “너무 힘들다”=나영이의 어머니(32)는 “관심을 갖지 말아달라. 도움도 필요 없다”며 사건 확대를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안산시 사회복지과 관계자는 “인터넷을 통해 사건이 알려지면서 오늘 하루에만 나영이를 후원하겠다는 전화가 10여 통 넘게 왔다”며 “나영이 어머니에게 이를 알렸지만 ‘관심을 갖는 것이 너무 힘들다. 당분간 모든 후원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나영이 어머니가 ‘후원을 받으면 (사건을 떠올리게 돼) 나영이에게 더 큰 피해를 줄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고 말했다.

나영이 집을 담당하는 사회복지사도 “추석을 앞두고 주민센터로 들어온 쌀과 부식류 등에 대해서도 나영이 어머니가 받기를 사양했다”며 “주변의 관심을 꺼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영이 어머니는 식당보조일로 월 40여만원을 벌고 있다. 또 안산시에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돼 있어 기초생계급여 48만여원과 장애아동부양 수당 10만원이 국가에서 지급된다.

박성우·박유미·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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