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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과학 칼럼

천문학자, 개미학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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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올 한가위는 어디를 가나 청문회 얘기로 소란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할로 섀플리(1895~1972)가 하버드대의 천문대 대장으로 선임될 당시의 뒷얘기를 고향집 사랑방 토론의 주제로 삼고 싶다. 태양을 은하 중심에서 먼 변방으로 몰아낸 주인공이 섀플리다.

미주리주 내슈빌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5년 중퇴지만 독학으로 신문 기자로 활약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섀플리는 기자 생활을 접고 6년 과정 고등학교에 입학, 2년 만에 최우수 학생으로 졸업한다. 22세에 저널리즘을 공부하기 위해 미주리대에 입학했으나 신문학과가 그 이듬해에야 개설된다는 사실을 알고 학과 목록을 다시 뒤져야 했다. 알파벳 순으로 첫 번째인 고고학(Archaeology)은 발음하기 어려워 그 다음에 오는 천문학(Astronomy)을 택했다고 한다.

이렇게 시작한 천문학이지만 그는 우리 은하가 알려진 것보다 훨씬 클 뿐 아니라, 그 중심이 태양이 아니라 궁수자리 방향으로 수만 광년 떨어져 있다고 규명했다. 그 명성으로 하버드대 천문대의 대장 후보로 발탁은 됐지만 지명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 몇몇 고위급 인사위원이 그의 업적에 대해 시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인사위원으로, 개미 연구에 저명한 학자가 옹호했다. “천문학자로서 섀플리의 학문적 역량은 판단할 수 없어도 섀플리가 자신이 알고 있는 개미 연구자와 같은 사람이라면, 그의 자질을 보증할 수 있다”고 증언했던 것이다. 이 증언으로 섀플리는 1921년부터 31년 동안 하버드대 천문대의 대장을 역임하게 된다. 그렇다면 별과 개미 사이에 무슨 특별한 관계라도 있단 말인가.

천문학자들은 밤을 꼬박 새워 하늘의 사진을 찍고 동틀 무렵에 잠자리에 든다. 오전 10시에서 낮 12시 사이에 일어나 전날 촬영한 건판을 현상해 관측 결과를 점검하고 그날 밤에 있을 관측을 준비한다. 윌슨 산 관측자 숙소에서 60인치 망원경이 있는 돔으로 가는 길가에 바위 둔덕이 하나 있었다. 섀플리는 매일 이 바위에 앉아 수면 부족에서 오는 피로를 달래면서 개미들의 행동거지를 관찰했다. 관찰 결과는 개미 연구 학술지에 종종 발표됐고, 이 논문들이 앞에서 언급한 전문가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이다. 별의 특성과 개미의 행동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있을 수 없지만 섀플리의 성공 비결은 관측과 관찰에 내재하는 연구 방법의 동질성과 과학적 사고의 보편성에 있었다.

내각이 구성될 때마다 매스컴은 구성원의 지연과 학연을 분석한다. 요즘은 이공계 출신 비율이 분석 대상에 추가된다. 중국이 주요 2개국(G2)의 반열에 들면서 생긴 기이한 현상이다. 과학기술과 정치예술은 그 성격이 하늘의 별과 땅의 개미만큼이나 서로 다르겠지만 과학적 사고를 할 줄 아는 관료가 중국 경제를 일으킨 주역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문과와 이과로 나누어 가르치는 우리네 교육제도의 문제가 드러난다. 우리 국회의 이과 출신 비율이 3분의 1만 돼도 훨씬 생산적인 청문회를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에서는 검증이 불가능한 주장이 설 자리가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홍승수 서울대 명예교수 물리천문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