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구속영장 재청구 땐 시민 의견 듣겠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검찰이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때 일반 시민의 의견을 듣는 제도가 추진된다. 또 벌금형으로 약식 기소를 하기 전에 당사자에게 소명 기회를 주는 제도도 마련된다.

김준규(사진) 검찰총장은 29일 대전고등검찰청에서 전국 검사장 간담회를 열고 검찰 운용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피의자를 압박하기 위해 수사 내용과는 다른 혐의로 구속한 뒤 수사를 계속하는 이른바 ‘별건 수사’를 금지하고, 특별수사를 사후 평가하는 방안 등이 포함됐다. <본지 9월 11일자 1, 8면>

이날 간담회에는 김 총장과 전국 5개 고등검찰청과 18개 지방검찰청 검사장 등 검사장 이상급 검사 33명이 참석했다. 김 총장은 모두 연설에서 “과거 60년의 수사 방식에서 벗어나 선진 일류검찰로 변모하자”며 “범죄 자체는 철저하게 수사하되, 수사를 받는 고통은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 같은 수사 패러다임을 ‘청진기론’으로 설명했다. 저명한 의사가 환자를 진찰할 때 차가운 청진기를 자신의 가슴에 먼저 대서 따뜻하게 했다는 일화를 예로 들었다. 김 총장은 “병원에서 청진기가 처음 가슴에 닿을 때 무척 차갑게 느껴진다. 검찰에 수사를 받으러 오는 국민들의 심정이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민에게 차가운 청진기를 댈 것인가, 따뜻한 청진기를 댈 것인가가 우리의 화두”라고 덧붙였다.

수사심의위원회와 벌금 이의 제도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방안이다. 수사심의위는 검찰이 법원에서 기각된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때나 구속피의자를 석방할 때 검찰 수사가 과도한지에 대해 일반인의 의견을 듣는 것이다. 김 총장은 “기소 여부를 배심원단이 결정하는 영미식 대배심 제도의 아이디어를 활용해 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벌금 이의 제도는 벌금형으로 약식 기소될 피의자들에게는 벌금액과 기소 사실을 사전에 알려 검사에게 소명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수사 중인 사안과 다른 범죄 혐의를 이용해 피의자를 압박하던 잘못된 관행도 바로잡기로 했다. 별도의 혐의에는 새로운 사건 번호를 부여해 ‘별건은 별건으로’ 수사하겠다고 검찰은 밝혔다. 구속영장이 기각됐을 때에도 사건 처리는 최장 20일 이내에 신속히 진행하기로 했다.

또 대검의 첩보에 의해 일선에서 진행된 내사가 6개월 이상 길어질 때에는 사건을 대검으로 환수하는 방안도 도입된다. 검찰은 생계형 서민 범죄에는 관용을 베풀고, 뇌물 등 부패범죄는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기로 했다.

검찰은 성공한 수사는 검찰 내에 전파하되, 실패한 수사는 문제 사례로 연구하고 검사의 인사에도 반영하기로 했다. 주요 사건이 무죄 판결이 내려졌을 때에는 법학교수와 변호사 등 외부 전문가들과 함께 원인을 분석하기로 했다. 대검 조은석 대변인은 “실패한 수사에 대한 엄정한 평가로 ‘제 식구 감싸기’라는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검 중수부는 일선 수사를 지원하는 업무에 주력하기로 했다. 중수부 인력은 일선에 예비 인력으로 배치된다. 대검은 최근 대검 연구관의 20%를 감축했다. 김 총장은 “낭비적인 일을 버리고, 방만한 조직은 밀집대형으로 바꿔 검찰의 변모된 모습을 수사로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대전=김승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