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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총재 사활건 투쟁선언…강경 배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한나라당 이회창 (李會昌) 총재가 물을 등지고 섰다.

14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한 李총재는 어느 때보다 굳은 표정이었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를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가를 분수령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李총재는 "우리 당이나 나에게 (대선자금과 관련) 문제가 있으면 정치를 그만두겠다" 고 주장했다.

그 조건으로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을 물고 늘어졌다.

"金대통령에게도 비자금과 대선자금에 문제가 있다면 대통령직을 떠나야 한다" 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검찰의 수사가 아닌 특별검사를 통한 조사라는 조건이 붙어있다.

대선자금문제는 어차피 여야 할 것 없이 선관위에 보고한대로 깨끗할 수는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그렇게 보면 金대통령을 걸고 나선 것은 李총재에 대한 수사를 여기서 중단하라는 요구다.

李총재의 한 측근은 "李총재가 정치를 그만 두는 상황이 온다면 金대통령의 대선자금에 관한 폭로와 함께 장외투쟁에 나서게 될 것" 이라고 했다.

김영삼 (金泳三.YS) 전 대통령이 확보하고 있는 DJ비자금이나 대선자금 등을 동원하면서까지 전면전을 벌이겠다는 태세다.

그러기 위해서는 "YS는 물론 사회 각계의 시위단체와도 연대할 수 있다" 고 한 측근은 전했다.

李총재가 이처럼 초강경 입장을 천명한 것은 여권이 李총재 죽이기 차원에서 세풍 (稅風) 사건을 이용한다는 확고한 믿음 때문이다.

더구나 金대통령 취임 이후 줄곧 시달려온 세풍 문제를 여기서 차단하지 못하면 다음 대선까지 가기 전에 무너져버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李총재에게 있다.

신경식 (辛卿植) 총장은 "여권에 마땅한 차기 대통령후보가 없어 우선 야당의 유일한 대안인 李총재부터 흠집을 내려는 것" 이라고 주장했다.

"삼장법사가 손오공 머리에 쇠고리를 씌워놓고 말을 안 들으면 죄어 고통을 주듯이 세풍이란 고리를 씌워 수시로 활용하려 한다" 는 것이다.

李총재는 이날 대구에서 열린 백승홍 (白承弘) 의원 후원회에서 "실패와 실

정, 도덕성 타락으로 얼룩진 이 정권은 이제 한계상황에 도달했다" 면서 "근본원인은 대통령 및 집권당의 오만과 독선" 이라고 비난했다.

이날 오전 이만섭 (李萬燮) 대행 등 국민회의 신임 당직자들이 인사차 예방하겠다는 제의도 거절했다.

임시국회도 전면 거부키로 했다.

그는 "金대통령의 여야관계에 대한 인식에 기본문제가 있다" 면서 "야당 죽이기 카드를 활용해 여야관계를 조절하려 하는 그 발상을 바꾸기 전에는 (정국을) 풀 수 없다" 고 강조했다.

여권이 세풍문제를 풀어주지 않는 한 극한으로 치달아가겠다는 각오다.

김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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