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 수사에 한나라 전면전 선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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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나라당 이회창 (李會昌) 총재는 13일 노기 (怒氣) 를 감추지 못했다.

평소의 불그레한 뺨은 이날 따라 새빨갛게 상기됐다.

李총재는 "검찰이 김태원 전 재정국장을 긴급체포한 것은 지난 97년 대선자금 전모를 캐내려는 데 진의가 있다" 고 주장했다.

세풍 (稅風.국세청 동원 대선자금 불법모금) 수사 때문이라면 당시 사무총장 등에 대한 그동안의 간접조사만으로 충분하며 당의 공식 자금창구인 실무자 체포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정치보복' 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정말 커다란 위기가 닥쳐올 것" 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정치에 대한 환멸과 분노를 느낀다" 고도 말했다.

이날 긴급히 열린 의원총회와 총재단회의도 金전국장 체포를 현 정부의 '이회창 죽이기' 로 단정하고 대여 (對與) 전면전을 선포했다.

李총재는 측근들을 통해 소속 의원과 당직자들에게 '결사항전' 의 각오를 다지라고 전했다.

李총재가 초강경 입장을 밝히고 나선 것은 여권이 金전국장 수사를 통해 李총재에게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히려는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金전국장에 대한 조사는 이미 관련 인사들의 조사에서 드러난 세풍 사건에 대한 조사를 보완하자는 것이 아니라 한나라당 정치자금 전반을 들추겠다는 의도라는 판단이다.

다시말해 여권의 공세적 국면전환에는 '강공만이 해법' 이라는 결심이 깔려 있다고 한나라당은 의심하고 있다.

현재 검찰은 金전국장 외에 한나라당 이신범 (李信範) 의원 소환방침을 밝혔고, 황낙주 (黃珞周). 김윤환 (金潤煥). 조익현 (曺益鉉) 의원에 대한 공판도 예정돼 있다.

"여권 핵심부가 내각제 논의 등 공동여당 내 문제는 물론 대야 (對野) 관계에서도 밀어붙이기라는 정공법을 선택했다" (安澤秀대변인) 고 분석하고 있다.

李총재는 여기서 밀리면 당이 사분오열 (四分五裂)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는 것이다.

安대변인은 "현재 분위기로 볼 때 여권과의 전쟁은 당분간 지속될 것" 이라며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 이라고 했다.

신경식 (辛卿植) 사무총장은 "경우에 따라서는 정권퇴진 운동도 생각할 수 있다" 고 했다.

한나라당은 일단 '국회 국정조사나 특별검사를 통한 대선자금 수사' 로 맞불을 지르며 여권의 반응을 지켜볼 예정이다.

그러나 여권이 강경한 태도를 굽히지 않을 경우 대격돌을 벌이겠다는 것이 李총재의 결심이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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