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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재도전] 7. 일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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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홋카이도 (北海道) 삿포로 (札幌) 인근의 에베쓰 (江別) 공단. 세계 2위의 드릴제조업체인 미국 타이콤이 흰색 공장건물 공사를 마무리하고 막 기계설치를 준비 중이다.

8월부터 머리카락 굵기만한 정밀 드릴을 생산, 일본 및 아시아에서 판매할 계획이다.

홋카이도청은 이 공장을 일본 기업보다 더 애지중지한다.

히사다 야스유키 (久田康由喜) 에베쓰시 기업입지계장은 "지역경제에 큰 보탬이 될 기업이 들어와 주민.도청 모두 환영하고 있다" 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97년 다쿠쇼쿠 (拓殖) 은행의 도산으로 일본 내에서도 가장 경기가 나빴던 홋카이도에 무려 6년만에 외국기업이 제 발로 찾아들었기 때문이다.

초기 투자금은 9억엔에 불과하지만 도청측은 이를 지역경제 회생의 불씨로 상징화하고 있다.

홋카이도 경제는 흔히 일본경제라는 점 보기의 꼬리부분에 비유된다.

이륙 (호황) 때는 가장 나중에 올라가고 착륙 (불황) 때는 가장 먼저 땅바닥에 닿는 부분이라는 것. 도청 경제부의 마쓰나미 후미히로 (松浪文博) 팀장은 "일본 경기의 움직임을 알려면 먼저 홋카이도 경기를 잘 봐야 한다" 고 권했다.

단편적이지만 홋카이도 경제가 기지개를 켜는 모습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우선 대형 공단이 공장 부지를 늘리고 있다.

항만시설을 갖춘 3천㏊ 규모의 이시가리 (石狩) 공단은 접안시설 및 도로 확충공사가 한창이다.

다카시마 마사유키 (高島眞恭) 공단 영업부장은 "입주교섭이 늘어 기반공사를 착착 진행 중" 이라며 "공단의 물동량도 폭주해 한국의 흥아해운이 정기선을 늘리기로 했다" 고 귀띔했다.

지난해 1조6천억엔의 현금수입을 안겨다 준 관광객도 올들어 4~5% 늘어났다.

소비도 조금씩 살아나 도내 최대 규모 쇼핑센터인 오타루의 MYCAL은 주말이면 쇼핑객으로 미어져 연결된 전철역 치쿠코 (築港) 역사를 확장했을 정도.

장사가 된다 싶었던지 도쿄의 명물 스트립쇼 극장인 '도톰보리' 가 올 봄 삿포로의 환락가 스스키노로 이전했고, 도에이 (東映).쇼치쿠 (松竹) 등 영화사들도 삿포로역 앞에 복합 영화관을 세우기로 했다.

일본 경제의 회복세는 숫자로 금방 나타난다.

98년 마이너스 2.8%로 전후 최악을 기록했던 성장률이 올해 1분기엔 1.9%로 반전됐다.

경제기획청의 지역경제동향 조사결과도 3년만에 '전지역 호전' 으로 나왔다.

일본 정부는 당분간 제로금리와 엔저를 유지해 경기회복세를 이어가려고 안간힘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부동산경기. 요코하마시가 최근 실시한 단독주택 택지분양의 경쟁률은 최고 1백42대 1을 기록했다.

택지분양사무소를 찾은 40대 샐러리맨 후지이 아쓰시 (藤井敦) 는 "취득세가 가벼워졌고 금리도 내렸고 땅값도 싸져 더 기다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 신청서를 냈다" 고 말했다.

주가도 올라 연중 최고치인 1만8천엔을 넘었다.

구조조정과 외자유치가 속속 이뤄져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썰렁하던 유흥가 분위기도 달라졌다.

주총시즌에다 보너스철을 맞아 긴자.아카사카의 술집엔 손님이 부쩍 늘었다.

1인당 5만엔은 족히 나오는 아카사카의 고급클럽 뉴 펜트하우스는 7월 들어 하루 전 예약해야 괜찮은 방을 잡는다.

이곳에서 일하는 이시이 리쓰코 (石井律子) 는 "연초에 비해 손님이 30% 정도 늘었다" 고 말했다.

그러나 여러 긍정적 지표에도 불구하고 일본 경제가 완전히 정상궤도에 들어섰다고 보기는 이르다.

우선 기업의 설비투자가 3년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통산성에 따르면 올해 일본 기업의 설비투자는 14조2천5백억엔으로 98년보다 1.7%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흥업은행 기업조사반의 이시노 마사히코 (石野雅彦) 선임연구원은 "기업들이 현금흐름을 중시해 일단 매출과 수입이 늘어야 투자를 검토할 것" 이라고 말했다.

5%를 넘보는 사상 최악의 실업률도 걱정거리다.

구조조정이 계속되면 고용사정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실업이 늘면 소비에 찬물을 끼얹어 경기회복에 부담이 된다.

이 때문에 가을께 공공사업 발주가 중단되면 성장률이 다시 하락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를 두고 비유를 즐기는 사카이야 다이치 (堺屋太一) 경제기획청 장관은 "지금의 경기는 해뜨기 전인 오전 4시가 조금 안된 시점으로 슬슬 밝아지고는 있으나 언제 먹구름이 낄지 모른다" 고 여운을 뒀다.

도쿄 = 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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