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가난과의 전쟁' 선포…미국판 '제3의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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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헐벗고 가난한 빈민촌을 순방하는 포버티 투어 (poverty tour) 를 강행하며 '빈곤과의 전쟁' 을 선포하고 나섰다.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자 9년째 호황을 구가하는 미국이지만 산간오지나 인디언 보호구역, 대도시 복판 뒷골목에는 절대 빈민층이 수두룩하다.

클린턴의 포버티 투어는 이들 지역에서 미 독립기념일 다음날인 5일부터 시작, 4일동안 실시됐다.

지난 64년 린든 존슨 대통령 이후 처음으로 궁핍한 애팔래치아 산악지역 오지를 찾았고,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이래 처음으로 사우스다코다주의 황량한 인디언 보호구역을 들렀다.

대도시인 세인트루이스의 뒷골목과 흑인폭동의 진원지였던 로스앤젤레스도 방문했다.

클린턴은 가는 곳마다 가난에 찌들고 지친 지역주민의 손을 잡고 "호황기인 지금 일하고자 하는 여러분들에게 취업의 기회를 주지 못한다면 미국은 앞으로 영원히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 이라고 외쳤다.

◇ 클린턴의 노림수 = 워싱턴포스트지는 클린턴의 포버티 투어를 '미국판 제3의 길' 이라고 명명했다.

정부가 빈곤문제 해결의지를 보임으로써 '가난은 나랏님도 못고친다' 는 보

수주의자들의 입장과는 선명하게 대비되는 자유주의자의 모습을 부각시키겠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클린턴이 남은 임기 안에 빈곤층 문제해결의 실마리라도 잡는다면 성추문과 탄핵으로 얼룩진 자신의 이미지를 크게 개선하고 물러날 수 있다.

이는 당연히 내년 대선에서 민주당측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실업률이 지난 30년 이래 최저수준을 기록하는 등 경제 호황기인 지금이 빈곤인구를 산업인력으로 전환시킬 절호의 기회라는 계산도 깔려 있다.

◇ 어떻게 해결하나 =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이른바 '신 (新) 시장제안 (New Markets Initiative)' 이 클린턴의 빈곤퇴치 해법이다.

빈곤층에 대한 생계자금 지원이나 기업들의 선의에 의존하는 대신 빈곤지역에 투자하는 기업에 대해 정부가 감세.대출보증 등 금융.세제혜택을 줌으로써 간접적으로 빈곤지역 개발을 촉진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렇게 할 경우 정보통신 등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약 1백50억달러가 빈곤지역에 신규투자될 것으로 백악관측은 내다보고 있다.

◇ 전망 = 관건은 정부 재정부담을 전제로 하는 금융.세제지원. 이에 대해 예산을 만지는 공화당 주도의 의회가 선선히 협조할지가 의문이다.

게다가 빈곤지역들은 한결같이 낮은 교육수준, 인프라 부족, 높은 범죄율, 열악한 주거 환경 등 투자에 불리한 조건들을 갖고 있다.

결국 해당 지역사회와 주민들이 투자를 끌어들이겠다는 의지와 노력이 전제되지 않고는 클린턴의 의욕적인 빈곤퇴치 계획은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할 공산이 크다는 회의론이 많다.

워싱턴 = 김종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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