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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삼성차 처리의 바른 방향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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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확히 2년 전 7월 기아자동차가 부도위기에 몰렸을 때, 당시 기아자동차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가에 따라 한국경제의 운명이 결정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각종 연구보고서와 청문회를 통해 어느 정도 밝혀진 대로 기아자동차 처리의 지연과 그 과정에서 나타난 정부의 경제관리능력 한계가 한국 정부와 한국 경제의 국제적 신인도를 결정적으로 낮추는 계기가 되었음은 이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 삼성자동차 문제가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등장하면서 이 문제를 우리가 어떻게 해결하는가가 또다시 한국 정부의 문제해결 능력과 한국 경제의 국제신인도가 평가받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꼭 2년 전 기아자동차 문제가 터졌을 때도 그랬듯이 지금 이 순간에도 온세계와 국제금융시장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만약 우리가 지금 삼성자동차 처리를 놓고 그때와 같은 과오를 다시 범한다면, 외환위기 이후 우리가 온갖 고통을 겪으면서 쌓아온 공든 탑이 일순간에 다시 무너질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 삼성자동차 처리를 놓고 전개되는 상황이 사람과 기업만 바뀌었지 그 당시와 너무 유사하다.

첫째, 그때나 지금이나 선거를 앞두고 문제가 정치쟁점화돼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당시에는 '국민기업' 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부산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경제문제를 경제원리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지금도 집단행동과 정치논리로 해결하려 하고 있다.

어느 기업이든지 정부가 살리기로 작정하면 얼마든지 살릴 수 있는 것으로 대부분의 정치인과 국민들이 아직도 믿고 있다.

둘째, 문제의 본질이 문제해결 과정에서 변질되고 있다.

기아자동차의 처리를 둘러싼 논의가 당시 경제부총리와 기업총수간의 자존심 대결과 기세싸움으로 변질돼 문제해결이 지연되고 상황이 더 악화된 것을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삼성자동차의 처리를 놓고 또다시 이런 소모적 갈등양상이 다시 벌어지고 있다.

부실기업의 처리와 국가경쟁력 회복이 본질이건만, 문제가 자꾸 정부 대 재벌의 기세대결과 마찰로 변질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윽박지르기와 버티기 때문에 문제의 해결이 더 어렵게 되고 있다.

셋째, 문제를 원리원칙에 입각해서 정공법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눈앞의 고통과 갈등을 모면하기 위해 편법으로 문제를 덮고 원칙을 훼손하려는 것도 유사하다.

그 당시엔 기아자동차를 국영기업화했었다.

지금은 최대주주로 하여금 투자금액을 초과해서 손실을 부담시키려 하고 있다.

또 그렇다고 해서 시장에서 거래되지도 않는 기업의 주식을 과대평가해 담보로 맡기는 것도 일종의 편법이다.

과거의 실패로부터 배우지 못한 사람은 그 실패를 반복하게 돼 있다.

지금 우리는 불과 2년 전에 겪었던 일을 거의 그대로 다시 겪고 있다.

우리가 지난 2년 동안 값비싼 수업료를 내고 배운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경제문제를 경제원리로 해결하지 않으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것이다.

97년 말에 외환위기가 닥쳤던 것은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부도가 나고 은행이 부실화돼서가 아니다.

그런 일은 다른 나라에서도 늘 발생하는 일이다.

다만 한국에서 이것이 위기로 발전한 것은 한국 정부가 문제를 원리원칙대로 해결할 능력과 의지가 없다는 것이 그 당시 기아자동차 문제를 계기로 드러나게 됐기 때문이다.

지금 삼성자동차의 처리는 한국정부가 과연 지난 2년여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시장원리에 입각한 경제문제 해결 능력과 의지를 갖추게 되었는지를 판단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삼성자동차 문제를 다시 2년 전처럼 단기적 편법과 정치논리로 해결하려 한다면 삼성자동차 문제는 한국 경제의 새로운 암초가 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문제를 오직 시장원리와 경제논리에 따라 차분하게 비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세계가 한국 정부가 삼성자동차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삼성자동차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따라 향후 한국 경제의 운명이 다시 결정될지도 모른다.

김진석 홍익대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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