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기업돈줄 돌려놓은 증시 '간접투자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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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주식에 대한 간접투자 확산이 주가지수를 끌어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금융시장의 중심을 은행에서 증권시장으로 바꿔놓고 있다. "

한 증권사 최고경영자는 종합주가지수 1, 000 돌파의 최대 요인을 주식형 수익증권과 뮤추얼펀드의 수신고 증가로 꼽으며, 개인투자자들의 간접투자가 늘어나는 한 증시는 은행을 대신해 금융업의 핵심으로 위치를 굳힐 것이라고 단언했다.

기업이 증권시장에서 무이자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한 비싼 대출금리를 주 수입원으로 하는 은행은 더 이상 과거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주식시장에 '간접투자 혁명' 이 조용하면서도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저금리 시대에 갈 곳이 없는 뭉칫돈들이 투신과 증권사들의 주식형 간접투자상품으로 몰리면서 주가를 끌어올리고, 기업들은 증시를 통해 무이자 자금을 조달해 실적을 개선시키는 선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은행들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대출금리 인하경쟁을 벌이는, 과거엔 상상도 하기 힘들었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금융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 기업들이 자금조달원을 은행에서 증시로 바꾸고 있다. 은행들은 고객을 잡기 위해 금리 등 각종 대출조건을 완화시키고 있지만 이미 금융시장의 중심권으로서의 역할을 증권시장에 빼앗기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외환위기 이전인 지난 97년 8월 말 현재 은행권의 예금잔액은 1백99조8천억원. 같은 날 투신권의 수익증권 수탁고는 96조1천억원 정도로 은행의 절반수준을 밑돌았다.

그러던 것이 지난 6월 말에는 은행 수신고 2백67조1천억원, 투신권 수탁고 2백90조6천억원으로 역전됐다. 부동산 시장이 아직 본격적인 상승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은행에서 빠져나가는 돈의 대부분이 증시로 유입되고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하반기 들어 투신권으로의 자금유입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어 연말께엔 투신 수탁고가 은행 수신고보다 50% 이상 늘어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기업들의 자금조달 양태를 보면 증시의 위상을 쉽게 알 수 있다. 지난 97년 금융기관들의 기업대출은 전년 대비 67조원이 증가했었으나 98년엔 오히려 25조5천억원이 줄었다.

반면 기업들의 유상증자 규모는 97년 3조5천억원에서 지난해엔 14조4천억원으로 불어난 것.

조흥은행의 최동수 부행장은 "기업들이 요구하는 수준의 금리를 맞추지 못하고 있어 우량기업들의 은행권 이탈이 가속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정도다. 은행들도 이제부터는 투자은행화해 고객들의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 간접투자 증가가 경제를 살리고 있다 = 개인투자자들의 간접투자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저금리와 투자위험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실세금리 (3년만기 우량 회사채 수익률기준)가 8%대에서 유지되자 국제통화기금 (IMF) 관리체제 이후 고금리에 길들여진 현금부자들이 증시로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기관투자가와 외국인 등 큰손들이 장세를 좌우하는 양상이 뚜렷해지면서 개인투자자들은 투자위험을 낮추기 위해 투신.증권의 간접투자 상품에 가입하는 추세.

상반기 중 투신사들의 주식형 수익증권에 유입된 자금은 총 23조원에 달하며 지난해 말부터 증권사들이 팔기 시작한 뮤추얼펀드도 2조원을 돌파하는 등 빠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기관투자가들은 간접투자상품 판매를 통해 들어온 돈 가운데 지난 6개월 동안 9조3천억원 가량을 주식매입에 쏟아부었다.

주가가 오르면서 기업들은 대규모 유상증자를 통해 증시에서 무이자 자금을 조달해가고 있다. 상반기 중 이미 20조원을 끌어다 썼으며, 하반기에도 약 20조원을 더 조달할 계획들을 세워놓고 있다.

아직 설비투자가 활성화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유상증자로 조달한 자금을 주로 부채상환에 사용, 우량기업들의 부채비율은 이미 정부의 가이드라인인 2백%아래로 떨어진 상태다.

임봉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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