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햇볕 실습'이후의 대북정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정부의 대북 (對北) 정책이 새로운 시련국면에 직면해 있다.

지난 1년반 동안 국민의 정부는 이른바 대북 햇볕정책 (혹은 포용정책) 을 추진해 왔으며 국민들은 이런 정책의 '실습' 과정을 지켜봐 왔다.

햇볕정책은 기본적으로 한반도에서 평화를 유지하고 북한을 흡수통일하지 않으며, 화해와 협력을 통해 대북관계를 개선해 나간다는 데 그 목표를 두고 있다.

그리고 이런 햇볕정책의 결정과 추진과정에는 적어도 북한이 체제위기에 처해 있는 이상 인내심을 갖고 북한에 대해 경제적.인도적 지원과 협력을 확대해 나갈 경우 북한도 변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과 판단이 내재돼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 - 서해 교전사태, 관광객 억류, 베이징 (北京) 차관급 회담결렬 - 은 과연 그러한 인식과 판단이 얼마만큼 타당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새삼 의문을 갖게 하고 있다.

본래 대북정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든 북한의 실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평가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북한이 현재 아무리 경제적으로 곤란한 상태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평양의 지배층들은 남한의 햇볕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있다.

사실 북한지배층구조 자체가 변화하지 않는 한 정부의 햇볕정책은 근본적으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제 정부의 햇볕정책은 최소한 그 추진전략과 방법에 있어 수정을 불가피하게 하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향후 정부의 대북정책추진과 관련해 몇 가지 사항들이 특별히 고려될 필요가 있다.

첫째, 정부는 안보정책과 햇볕정책의 병행추진을 재고해야 한다.

물론 정상적인 상황에서 안보와 햇볕정책의 병행추진은 가능할 수 있다.

그리고 두 가지 정책들은 상호보완적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우리의 안보상황을 계속 위협할 때 두 가지 정책의 병행은 불가능하다.

북한이 탄도미사일 등 전략무기를 개발하고 또 휴전선상에서 계속 무력도발을 자행하는 경우 햇볕정책과 안보정책은 병행추진될 수 없다.

이미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 안보 우선의 정책방향을 천명하고 한.미정상회담에서 미사일 사정거리 확대의사를 밝힌 것은 정부의 대북정책의 궤도수정을 시사한 것이다.

최소한 대북정책은 쌍방의 공존과 안전보장을 전제로 할 때 그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정부는 대북정책추진에 있어 신축성을 보여야 한다.

북한이라는 특수한 정치적 실체를 상대하는 것이므로 무조건적인 추진보다는 일정한 조건을 전제로 추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의미에서 정부의 햇볕정책은 분명히 조건적이고 선택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유연성있는 상호주의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또한 정부는 정경 (政經) 분리의 원칙을 재검토해야 한다.

북한사회가 정경일치의 동원체제하에 있는 한 정부가 정치와 경제를 별개로 해서 북한과의 교류와 협력을 추진하려고 한 것은 처음부터 현실성을 결여한 것이었다.

주부 민영미 (閔泳美) 씨의 억류사건은 단적으로 정경분리의 허점을 드러낸 것이다.

셋째, 정부는 대북정책 추진 과정에서 주변국가들과의 균형있는 협력관계를 추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포괄적인 대북접근의 틀에 따라 한.미.일 공조가 필요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탈냉전시대의 대북정책 추진에서는 보다 폭넓은 국제환경조성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는 중국 및 러시아와도 긴밀한 '동반자' 관계를 형성.유지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한.미.일 공조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자칫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의 신냉전화를 초래할 위협도 배제할 수 없다.

끝으로 정부는 언제나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깊이 인지해야 할 것이다.

대북정책이나 통일정책은 민족성원이면 누구나 관심을 갖는 정책영역이다.

따라서 정부는 이런 정책에 대해 국민들을 설득하고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제도적.절차적 장치들을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정부는 국민적 지지를 끌어들이는 데 있어 여야의 정치적 구별이나 보수 대 진보의 이분법적 (二分法的) 단순논리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할 것이다.

신정현 경희대교수.정치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