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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정종목 '숲속에는 고요가 산다' 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하얗게

허울 벗는 물소리, 내 귀가

맑게 트인다. 산꿩이 푸득푸득

산 그리메 털고

소용돌이소용돌이소용돌이가

복숭아나무에 차오른다.

청설모 한 마리

팽팽한 시위를 놓듯

건너간다. 바람이 가만

여물지 않은 씨방을 건드린다

우우우우 흩어져 꽃잎, 꽃잎

- 정종목 (38) '숲속에는 고요가 산다' 중

시에는 정 (情) 이 있고 경 (景) 이 있다.

정은 주관에 속하고 경은 객관에 속하기도 한다.

이 둘의 조화가 시의 핵심을 건드린다.

여기 시 하나. 여느 풍경이 펼쳐진다.

펼쳐진다기보다 숨찬 생략으로 풍경의 파편들이 서로 부딪친다.

'허물 벗는 물소리' 라는 것 '바람이…여물지 않은 씨방을…' 의 묘사는 제법 절묘함에 이른다.

이런 풍경 그리기의 배후는 정작 아무도 없다.

시인이란 부재 그것일 때도 있다.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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