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얗게
허울 벗는 물소리, 내 귀가
맑게 트인다. 산꿩이 푸득푸득
산 그리메 털고
소용돌이소용돌이소용돌이가
복숭아나무에 차오른다.
청설모 한 마리
팽팽한 시위를 놓듯
건너간다. 바람이 가만
여물지 않은 씨방을 건드린다
우우우우 흩어져 꽃잎, 꽃잎
- 정종목 (38) '숲속에는 고요가 산다' 중
시에는 정 (情) 이 있고 경 (景) 이 있다.
정은 주관에 속하고 경은 객관에 속하기도 한다.
이 둘의 조화가 시의 핵심을 건드린다.
여기 시 하나. 여느 풍경이 펼쳐진다.
펼쳐진다기보다 숨찬 생략으로 풍경의 파편들이 서로 부딪친다.
'허물 벗는 물소리' 라는 것 '바람이…여물지 않은 씨방을…' 의 묘사는 제법 절묘함에 이른다.
이런 풍경 그리기의 배후는 정작 아무도 없다.
시인이란 부재 그것일 때도 있다.
고은 <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