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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흡기 뗀 뒤 곧 100일 ‘존엄사 할머니’ 요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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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호흡기를 뗄 때 다들 곧 돌아가실 거라 예상했지만 벌써 100일 가까이 이렇게 건강하게 살아계시지 않습니까. 의료진들은 여전히 장모님이 식물상태라고 얘기하지만 언젠가 의식이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고 가족들은 믿고 있습니다.”

국내 첫 존엄사 판결에 따라 5월 21일 인공호흡기를 뗀 김모(77) 할머니의 맏사위 심치성(49)씨는 27일 오후 김 할머니가 입원 중인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가족들과 함께 있었다. 김 할머니가 인공호흡기를 뗀 후 스스로 호흡하며 생명을 이어오는 동안 심씨를 비롯한 김 할머니의 1남3녀와 사위·며느리들은 벌써 14주째 일요일이면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병실에서 가족 예배를 본다. 다음 달 1일이면 호흡기를 제거한 지 꼭 100일이 된다. 김 할머니가 건강했을 때는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가족들이 매일 2명씩 조를 짜서 병실을 지키고, 일요일에는 8~10명의 가족이 서로 얼굴을 마주 한다.

심씨는 김 할머니 상태를 묻는 질문에 “오늘은 맥박 90, 혈압 113/72, 산소포화도 96%, 호흡수 1분당 17회로 지극히 정상”이라며 “이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지만 한편으론 계속 같은 상태라 마음이 무겁다”고 말했다.

5∼6초간 호흡이 멈추는 무호흡 증상이 그동안 몇 차례 있었으나 요즘은 드물다는 것이 병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튜브를 통한 유동식 공급도 하루 세 차례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한 달 전쯤에는 김 할머니가 미세하게나마 움직이는 것 같아 가족들이 병원 측에 뇌파검사를 의뢰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가족들의 간절한 소망과 달리 검사 결과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병원 측은 갑자기 기도가 막히는 등의 문제만 없다면 김 할머니가 상당 기간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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