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4년 지금의 인천 송학동 1가 1번지에 들어선 세창양행 직원사택. 사각기둥이 아치를 받든 붉은 지붕에 흰 벽이 빛나던 2층 건물은 사무실·응접실·침실·오락실·식당·부엌·화장실을 갖추고 있었다.
“현대생활을 경영하려는 우리에게 재래 주택은 많은 부실과 결함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함을 보충하자면 우리는 부득불 현대문명의 지배자 되는 구미의 주택제도 중에서 우리의 생활에 적합한 것을 본받아다가 우리의 그것과 합치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가 보편적으로 제정할 우리의 새로운 주택이 포함할 실별(室別)을 말하자면, 침실·생활실·객실·서재·요리실(부엌)이면 족하다고 생각합니다.” 1923년 김유방은 ‘개벽’ 34호에 실은 글에서 양옥 보급의 필요성을 힘주어 말했다. 일제 치하를 거쳐 해방 이후 양옥이 전통가옥을 대체하면서 주거문화에 일대 격변이 일었다. 사랑채·안채·아래채 별개의 채로 연결된 열린 주거 공간이 안방, 거실, 주방, 화장실 등 하나의 공간 속 닫힌 방으로 바뀌었다. 창호지 한 장으로 막아 숨소리나 기침 소리까지 넘어 나오던 소통의 문도 현관 철문과 나무문으로 바뀌자 이웃은 물론 가족 간의 단절은 깊어만 갔다. 장작을 때서 온돌을 덥히던 시절 따뜻한 아랫목은 할아버지·할머니 차지였지만, 도시와 농촌을 가릴 것 없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후죽순처럼 들어선 아파트 밀림 속 우리의 거실에는 더 이상 윗목은 없다. 가족 성원 사이의 서열이 뒤집힌 오늘. 이웃과 가족 모두에게 열려 있던 옛 주거문화가 그리운 것은 무슨 까닭일까?
허동현(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 근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