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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지구촌 유지 그룹 좌장이 된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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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지구촌에도 영향력이 큰 유지급 국가들의 모임이 있다. 1976년 주요 선진국들로 구성돼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G7/8이 바로 그것이다. 그동안 G7/8은 국제사회 주요 이슈들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지구촌 ‘비공식운영위원회’로서 역할을 해온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지구촌의 경제력 판도가 크게 달라짐에 따라 G7/8의 대표성과 정당성, 그리고 효율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커지게 되었다.

그 결과 금번 세계경제 위기를 맞아 기존의 G7/8에다 우리나라를 포함하는 주요 신흥경제국들이 함께 참여하는 G20 정상회의가 출범하게 된 것이다.

지난주 미국 피츠버그에서 개최된 제3차 G20 정상회의는 G20이 경제협력에 관한 지구촌의 ‘주 논의의 장(premier forum)’임을 공식적으로 확인함과 동시에 우리나라를 2010년 G20 의장국으로 지명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외교사에 새로운 장이 펼쳐지게 된 것만이 아니라 세계경제 협력의 장이 바뀌게 된 것이다.

G20을 중심으로 지구촌의 새로운 거버넌스(governance) 체제가 출범됐고, 우리나라가 내년에 G20의 좌장으로서 지구촌의 경제 관련 중대사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일을 주도하게 됐으니 말이다. 한국이 1907년에 세계 44개국이 참여한 제2차 헤이그 국제평화회의에 이준 특사를 파견했으나 참석조차 하지 못하고 분사하지 않았던가.

그 이후 우리나라는 1991년에야 비로소 유엔 회원국이 됐고 건국 이래 지구촌의 대소사에 수동적으로 참여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던 우리에게는 실로 대단한 역사적 쾌거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이런 쾌거는 국민 모두가 피땀 흘려 축적해온 국력의 기초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그러나 직접적으로는 우리나라가 제1, 2차 G20 정상회의를 통해 보여준 역량과 기여를 국제사회가 인정해준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G20 정상회의는 거의 ‘말만의 잔치’로 끝난 G7/8 정상회의와는 달리 구체적이고 실천 가능한 정책방안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나라는 G20 정상회의가 이렇게 성공적으로 개최되는 데 크게 기여했고 이를 G20 국가들이 높이 평가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지금까지의 G20 정상회의 성과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평가되는 보호무역주의를 저지하자는 스탠드스틸(standstill)도 이명박 대통령이 주창해 G20 정상 간 합의를 얻어낸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지난 런던 G20 정상회의 준비과정과 정상선언문 작성에 적극 참여, 회원국 간에 이견이 있는 의제의 균형을 잡고 수사(修辭)가 아닌 행동계획을 마련토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런 요인들만으로 G20 한국 개최가 선택된 것은 아니다. G20에서 제외된 나라들 중 일부 국가의 G20에 대한 부정적 태도, 기존 G7/8 체제의 유지를 원하는 국가들, 그리고 회원국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G13 혹은 G14로 기존 G7/8을 확대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국가도 있었다. 이들 나라 정상과 이명박 대통령의 직접적인 접촉, 그리고 우리와 G20에 대해 의견을 같이하는 국가 정상들의 적극적 협력과 협조를 통해 이들 나라를 설득, 끝내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노력도 결국 한국 정부의 G20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와 기여 의지의 표현으로 보아 한국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갖게 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본다.

이제부터 우리에게 찾아온 이 중차대한 역사적 기회를 글로벌 한국의 위상 제고를 위해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힘을 합쳐 지혜를 모아 나가길 기대한다.

사공일 G20 기획조정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