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소 잃고 외양간만 탓하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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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묵은 신문을 한장 펼쳐든다.

95년 1월 17일 일본 고베 (神戶) 대지진이 지면을 강타한 날. 사상자만 5천여명을 냈던 그날의 대참사는 어떤 일이 있어도 굳건하리라던 고속도로마저 엿가락처럼 휘어지게 만들어버렸다.

그로부터 4년여. 일본은 재해를 방지하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신제품 1천5백여종을 개발해냈다.

화재가 발생해 전기가 나가도 수은전지 작동으로 경보음을 내는 화재경보기, 정전이 돼도 남은 소량의 전류가 특수 형광물질과 작용해 30분동안 불이 켜져 대피를 돕는 형광등, 무너진 건물에 매몰되더라도 단추 하나만 누르면 자신의 위치를 무선으로 알릴 수 있도록 휴대전화와 디지털 카메라의 기능을 합친 상품….

하나같이 고베 대지진 이후 현장을 샅샅이 검증해 문제를 캐낸 일본 정부가 기업에 권고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일본 매스컴들도 이런 상품이 나오면 적지 않은 분량으로 기사화하는 데 열심이다.

상품을 만드는 기업들도 이익을 챙기려고 들지 않아 값도 싸다.

지진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사회는 천재지변을 최소화하지 못했던 점에 주목했다.

그 뿐만 아니다.

재해현장에서 큰 불편을 겪었던 간이화장실과 취사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물이 없어도 미생물을 이용해 냄새를 없애는 간이화장실이라든가 한꺼번에 2백30명분의 밥을 지을 수 있으면서도 여성 네명이 들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슈퍼밥솥까지 개발해 냈다.

생명의 고귀함을 인식하고 어떤 경우에도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애쓰는 사회 전체의 마음씀을 보는 듯하다.

23명의 귀한 목숨을 앗아간 씨랜드 화재사고를 접하며 새삼 고베 대지진이 생각났던 것은 줄지은 대형사고 때마다 온 국민이 인재 (人災) 를 탓하고 개선을 촉구해왔음에도 '사람의 잘못으로 인한 억울한 주검' 이 양산되고 있는 까닭이 궁금해서였다.

해외언론들은 '사고 (事故) 공화국' 한국에 대한 진단을 '빨리빨리 증후군' 에 돌렸다.

철골 콘크리트 건물로 20m마다 비상구를 설치했어야 할 수련원 시설이 컨테이너 박스에 합판과 스티로폼으로 눈가림을 한 것을 보면 긴 공사기간을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함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빨리빨리' 는 '대충대충' 을 낳고 그래서 부실공사가 판치는 세상이 됐을 수 있다.

과연 그것 뿐일까. 고베 대지진 이후 일본사회가 보여준 일련의 일들을 보며 나는 반복되는 우리의 인재 주범은 안전불감증도,빨리빨리 증후군도 아닌 '인간 경시풍조' 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다.

어린이들을 돈벌이 대상이 아니라 세상에 오직 하나 뿐인 귀한 존재로 여겼다면 그런 날림시설을 제공할 수 있었을까. 또 잠든 아이들을 버려놓은 채 어른들만의 뒤풀이를 즐길 수 있었을까. 이 사건을 계기로 행정당국은 청소년 수련시설을 일제히 점검한다고 한다.

성수대교 붕괴사건으로 미리 다리의 이상여부를 진단해 보수하는 일이 활발해졌지만 우리 사회는 '사람이 불러일으킨 재앙' 과 맺은 악연의 끈을 끊진 못했다.

비가 새면 외양간의 지붕을 고치고 바람이 들면 벽을 고치는 것만으론 인재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다고 나는 여긴다.

소를 아끼는 마음이 없다면 외양간의 문제를 총체적으로 살피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씨랜드 사고는 미리 막을 수도 있었다.

서울시교육청의 유치원수련회 불가 통보도 있었고, 경기도의 수련시설점검 및 결과보고 지시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공문통보' 만으로 할 일을 다했다고 여기거나 무시해도 그만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는 한 어떤 예방조처도 한갓 무용지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씨랜드 사고는 보여주고 있다.

6월의 마지막날 날아든 비보에 할아버지에서 어린 꼬마에 이르기까지 삶과 죽음을 구별할 수 있는 이라면 예외없이 어린 넋들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이 일을 빚어낸 어른들에게 분노했다.

그러나 이들의 '억울한 죽음' 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면 분노와 비난에 그쳐서는 안된다.

어린이들의 현장체험학습 기피는 더더욱 해결책이 아니다.

정말 필요한 것은 '나 아닌 남을 존중하기' 를 생활화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사람이 사람 대접을 받고 사는 사회' 가 되도록 하는 일이다.

'나만' 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도' 인정하는 의식개혁을 이루는 일이야말로 제2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가 앞장서 할 일이다.

홍은희 생활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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