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그의 저서엔 지난 7월 국회 본회의에서 미디어법안이 의장 직권으로 상정돼 처리된 과정을 언급하며 김 의장을 비판하는 대목이 있다. ‘본회의가 있던 날 아침 한나라당 최고위원들이 모인 자리에 김 의장이 불려 갔고, 심하게 (법안 처리를) 압박하자 그만 굴복했다’는 등의 내용이다. 김 의장은 “사실을 크게 왜곡한 것”이라며 “정 대표에게 실망했다”고 했다.
정 대표는 언론에 배포한 보도자료를 보여 주며, 김 의장이 주장한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당적이 없는 의장이 한나라당 지도부 회의에 동석해 입법 문제를 논의한 건 불려 간 것보다 더 심한 것이며, 책에선 오히려 점잖게 표현했다”고 말했다. 김 의장이 본지 인터뷰에서 “정 대표는 말이 통하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뒤통수를 칠 줄 몰랐다”고 한 부분을 반박할 땐 정 대표의 언성이 높아졌다. 미디어법안 처리 과정을 얘기하면서 “뒤통수는 오히려 그쪽(김 의장)이 친 것”이라고 했다.
“뒤통수 친 건 내가 아니라 김형오 의장”
-정 대표 저서의 일부 대목이 왜곡됐다고 김 의장이 주장했다.
“같은 상황을 보는 시각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책의 내용이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의장이 한나라당에 불려 갔다’는 대목을 문제 삼았는데 김 의장 자신이 초청했다고 한다면 국회 의장실에서 만나야 맞는 것 아닌가. 당시 언론 보도를 봐라. 거기에도 ‘김 의장이 불려 갔다’는 표현이 나온다.”
-김 의장은 “정 대표에게 뒤통수를 맞았다”고 했다.
“나는 제발 미디어법안을 직권상정 하지 말라고 김 의장에게 간곡하게 얘기했다. 7월 25일이 국회가 끝나는 날이었는데 김 의장은 22일에 전격적으로 직권상정을 했다. 나는 국회를 다시 열고 31일까지는 협상을 할 걸로 짐작했다. 7월 19일 단식을 시작하면서 ‘적어도 2주 정도는 단식을 해야겠구나’라고 생각한 건 그런 예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협상이 진행 중이던 와중에 김 의장이 일방적으로 직권상정을 해 버렸다. 그런 게 뒤통수치는 거 아니냐.”
-저서엔 김 의장의 직책을 생략한 채 ‘김형오는…’이라고 썼다. 김 의장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제3자적 입장에서 서술할 때 몇 대목을 그렇게 썼지만 김 의장에 대해서만 그렇게 한 게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도 ‘김대중은…’ ‘노무현은…’ 이렇게 쓴 부분이 있다. 김 의장은 나의 정치적 경쟁자가 아니다. 명예를 훼손하려는 의도에서 쓴 것은 없다.”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가 최근 대한민국 국회를 ‘최악의 폭력국회’로 꼽았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의 인격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제도가 미비해서다. 미국은 소수당이 끝까지 반대한다면 상당한 시간을 미룰 수 있는 제도적 장치, 즉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 등의 장치가 보장돼 있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의 경우 다수당이 힘으로 밀어붙이는 걸 막으려면 물리력을 동원하는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이 야당일 때도 그랬다. 법안이 상정되는 걸 막기 위해 두 차례나 국회 법사위 문을 못질한 정당이 한나라당이다. 안기부의 국회 사찰 의혹을 제기하며 국회 본청 529호실 문을 통나무로 부순 당도 한나라당이다.”
-9월 정기국회 개회식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김형오 사퇴하라”는 피켓을 흔들며 퇴장했는데 좀 심한 것 아닌가.
“현상만 보고 잘못했다고 할 것이 아니라 원인을 살펴봐야 한다. 국회의장이 불편부당하게 국회를 운영했다면 야당이 그럴 리가 있겠는가. 현상만 본다면 ‘529호실 사건’ 때 한나라당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안기부의 국회 사찰 의혹에 초점을 맞춘다면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손학규 불출마 존중하지만 납득 어려워”
-정운찬 총리 후보자에 대한 평가는.
“우선 병역 문제가 걸린다. 이 얘기는 꼭 써 달라. 대통령도 군대를 가지 않은 것 아니냐. 그런 상황에서 총리도 병역을 면제받았다. 이것 정말 문제 아니냐. 이명박 정부의 현 내각에서 장관 5명과 대통령실장·국정원장·감사원장도 병역 면제를 받았다. 그런 그들이 어떻게 젊은이에게 군대에 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정 후보자의 경우 세금 탈루 의혹도 있다. 또 국립대 총장을 지냈는데 기업인으로부터 용돈을 1000만원이나 받았다. 여기에 아들 국적 문제까지…. 이번 인사청문회 대상 중에서도 최악이다. 한나라당은 야당 시절과 청문회 잣대가 완전히 달라졌다. 하지만 국민은 지난 10년 동안의 청문회를 기억한다.”
-손학규 전 대표가 불출마 선언을 했다. 10월 재선거 전략에 차질이 생긴 것 아닌가.
“본인의 결정을 존중한다. 손 전 대표는 당을 위해 그런 생각을 했겠지만 지금 우리에겐 이명박 정권의 독주를 심판하고 선거에 이기는 것이 절대적인 가치다. 선거 때 베스트 후보를 동원하는 건 정당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승리할 수 있는데 포기하는 정당? (고개를 갸우뚱하며) 글쎄, 납득하기 어렵다.”
-지난해에 비해 당 지지율은 올랐다. 그러나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로 전통 지지층이 결집한 결과일 뿐이라는 비판이 있다.
“나는 우리가 선명하게 싸울 때 싸우고 협력할 때 협력해 나온 결과라고 본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는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에게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이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의 국장을 수용하고 동작동 국립묘지 안장을 결정하면서 지지율이 그쪽으로 좀 쏠렸다고 생각한다.”
-정 대표는 부드러운 이미지의 소유자였다. 그런데 야당 대표를 하면서 인상이 좀 독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투쟁하지 않으면 야당의 생명력이 없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압도적인 표 차로 당선됐고, 여당은 우호적인 의석까지 국회의 3분의 2와 지방 권력의 70%를 장악했다. 여기에 정권 초기부터 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데 그 상황에서 싸우지 않으면 야당이 아니다. 나는 지난 연말 외교통상통일위 (폭력) 사태에 대한 비판에도 공감하지 않는다. 다수당이 일방적으로 점거하고 있는데 ‘아, 형님들 잘 하십시오. 다수당 잘 하십시오. 우리는 소수당이니까 가만히 있겠습니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난 그렇게는 절대 못 한다.”
-무소속인 정동영 의원은 복당시키는 건가.
“명예로운 합류가 좋지 않겠나. (야권) 통합을 추진하고 있으니 그 과정에서 합류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본다. 탈당한 지 1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헌
-박지원 정책위의장이 “민주당은 정세균 대표를 중심으로 단결하라”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유언을 공개하면서 파장이 일었다.
“그에 대해 확대 해석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김 전 대통령이 그런 말씀을 했다면 더 잘하라는 격려의 메시지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 유언을 재생산하거나 그걸 이용해 정치적인 플레이를 한 적도 없다.”
만난 사람=이상일 정치에디터
정리=구희령 기자 heali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