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은 내 불찰, 내가 의원이라도 따졌을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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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정운찬 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이후 처음으로 인터뷰를 했다. 중앙SUNDAY 단독 보도다. 정 후보자가 23일 새벽 인사청문회를 마치고 돌아오자 가족들이 함께 엉엉 울었다고 한다. 다음은 기사 전문.

정운찬 총리 후보자가 21일 오전 국회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이 질문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안성식 기자

"23일 새벽 인사청문회가 끝난 다음 귀가하니 오전 3시가 넘었더라. 아내와 아들딸이 TV를 통해 청문회를 꼬박 지켜보다가 집에 들어가니까 눈물을 흘리며 맞아들이더라. 아들과 딸은 ‘아버지, 왜 세금 신고를 제대로 못 했어요? 그거 잘 몰랐어요?’라고 묻더라. 그러면서 ‘아버지가 추궁당하는 걸 보고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라며 엉엉 울더라.

나는 ‘모든 게 내 불찰이다. 내가 부덕해 너희들 가슴을 아프게 했다.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아이들은 울면서 ‘우린 그래도 아버지가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다는 걸 잘 알아요. 힘내세요’라며 격려하더라. 아내도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더 열심히 의지하며 살았어야 하지 않느냐’고 책망하더라.

나는 가족에게 ‘우리 모두 지금부터 더 철저하게 자기 주변을 관리하며 살자’며 달랬다. 아들과 딸은 ‘아버지의 청문회를 보면서 느낀 게 많았어요. 바르게 살겠다는 마음가짐만으론 충분하지 않고, 언제 어디서든 자신을 성찰하며 살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나의 남은 인생이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모르지만 청문회를 계기로 나는 거듭나겠다는 각오를 했다. 내 아들딸도 도덕적으로 잘 살겠다는 다짐을 했다. 청문회에서 나는 고생했지만 배운 게 많았다. 나와 가족에겐 청문회가 하나의 축복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21∼23일 실시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혹독한 검증을 당한 정운찬 총리 후보자는 25일 밤 지인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기자도 모임에 동참했다. 정 후보자와 가까운 4명의 지인이 모인다는 사실을 알고 현장을 찾아간 것이다. 정 후보자는 지인들을 보자마자 “여러분께 미안하다”고 했다. “나에 대해 이런저런 문제가 지적되는 걸 보고 여러분이 실망했을지 모른다”며 “죄송하다”고 말했다. 기자가 “며칠 새 살이 빠진 것 같다”고 했더니 “실제로 그렇다. 청문회 때문에 체중이 줄었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청문회를 하고 나서 내 인생의 향로를 다시 한번 점검했다”고 덧붙였다. “앞으론 작은 문제도 일으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테니 지켜봐 달라”고도 했다.

그런 그에게 인터뷰를 하자고 했더니 “부족한 사람이 인터뷰는 무슨…”이라며 “향후 2~3개월 동안 근신하는 자세로 열심히 일하려고 한다. 인터뷰는 그 다음에 하자”며 사양했다. 기자가 질문을 던지며 끈질기게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그는 몇 차례 응하다가 “친척들이 내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며 자리를 떴다. 기자는 26일 오전 그에게 전화를 걸어 추가로 인터뷰를 했다. 정 후보자가 청문회를 하고 나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심경을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다음은 25, 26일 그와 나눈 일문일답.

“청문회 끝난 뒤 친구와 통음”
-청문회가 끝난 뒤 집에서는 울음바다가 됐다고 했는데 억울하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것인가.
“야당 의원 중 일부는 10분의 질문 시간 중 9분을 묻고, 1분만 대답할 시간을 줬다. 충분히 설명할 시간을 가지지 못했던 건 참으로 아쉽다. 청문회를 끝낸 직후의 내 심정은 솔직히 착잡했다. 내가 부족한 사람인 건 맞지만 나쁜 짓을 한 몹쓸 사람은 아니지 않느냐. 24일엔 대학총장으로 있는 친구와 함께 술을 참 많이 마셨다. 친구는 위로했지만 나는 통음(痛飮)을 했다. 하지만 야당 의원들을 탓하지 않으려 한다. 모든 게 내 부덕의 소치이고, 세금 문제 등 몇 가지에 대해서는 소홀히 처리한 점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야당 의원 입장이었다고 하더라도 일부 세금 문제에 대해서는 꼬집는 질문을 했을 것이다.”

-저명한 경제학자가 세금 내는 일은 왜 소홀히 취급했나.
“2008년의 소득이 문제였다. 그때 나는 재무설계회사에 세금 처리를 맡겼다. 그런데 그곳에서 좀 실수가 있었다. 내가 고문으로 있던 인터넷 서점 ‘YES 24’의 세금 문제도 그때 생긴 것이다. 청문회가 열리기 전 그 회사에서 자기들이 잘못했다고 설명하는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했지만 내가 그러지 말라고 했다. 최종책임은 나에게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 후보자가 지인들과 만나고 있을 때 국회 총리인사청문특위에선 청문보고서 채택 여부를 둘러싸고 여야가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국회의 현장을 지켜보던 청와대 비서관은 정 후보자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보고했다. 정 후보자는 비서관에게 “너무 신경 쓰지 말라”며 “청문보고서가 채택되고 임명동의안도 처리되면 총리로서 열심히 일할 것이고, 동의안이 부결되면 자연인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했다. 그는 지인들에게 “나는 정말 초연한 입장”이라며 “자연인으로 돌아가면 경제 연구도 하면서 종종 가던 서울 방배동 카페도 들러 맥주 한잔할 수 있는 여유를 즐기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다시 질문을 던졌다.

“총리로 90점 이상 받고 싶다”
-총리가 된다면 무슨 일을 하는 데 주력할 것인가.
“공부할 때 항상 90점 이상은 받았다. (총리로) 일을 하면 그 정도는 받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무엇보다 세종시를 모범 도시로 만드는 데 열중할 것이다. 행정부처 일부를 옮기는 걸로는 세종시가 훌륭한 도시가 되지 못한다. 행정의 비효율 문제를 해결하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모범 도시를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내 임기가 6개월이 되든, 1년이 되든 세종시의 기틀을 만드는 데 힘쓸 것이다. 공주 출신인 내가 공주에 대해 나쁜 일을 하겠느냐. 취임하면 많은 분을 만나 의견을 들을 것이고, 세종시 건설현장도 찾으려고 한다. 설마 고향분들이 나에게 돌을 던지겠느냐.

또 서민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가는 정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나도 서민 출신이 아니냐. 내가 미국에서 유학할 때 어머니가 ‘가마를 타는 상황이 되면 가마꾼의 처지를 생각하라’는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씀을 잊지 않고 있다. 용산 참사 사건과 관련해 증언석에 나온 유가족 권명숙 여사의 말을 듣고 눈물이 날 뻔했다. 용산 참사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노력할 것이다.”

-청문회 이후 이명박 대통령과 통화한 적이 있나.
“대통령께서 지금 미국에 가 계시지 않느냐. 24일 정정길 대통령실장과는 만났다. 내가 ‘청문회에서 잘하지 못했지만 아무튼 끝났다’고 했더니 정 실장이 ‘고생했다. 대통령께는 보고했다’고 말하더라.”

-청문회 운영과 관련해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고 생각하나.
“맑은 정신으로 청문회에 응할 수 있도록 준비 기간을 좀 더 주면 좋겠다. 청문회에선 병역 문제를 얘기하다 갑자기 경제 정책에 대한 질문이 나와 다소 황당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토픽별로 시간을 정해 청문회를 하면 보다 짜임새가 있는 청문회가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 정책과 비전을 따지는 데 좀 더 중점을 두는 청문회를 하면 좋겠다.”

-총리를 지내고 나면 대통령의 꿈을 꾸며 정치를 하는 것 아닌가.
“정치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총리를 잘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후배·제자들 중에 ‘왜 총리를 하느냐’고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 국가와 국민을 위해 마지막으로 봉사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총리직 제의를 수락했다. 이건 내 진심이다.”

-민주당 박지원 정책위의장은 ‘연애는 민주당과 하고 결혼은 한나라당과 했다’고 꼬집었는데.
“나는 한나라당뿐 아니라 민주당도 좋아한다. 서로 통하는 분도 많다. 그러나 연애는 무슨 연애냐. 내가 (민주당과) 손을 잡은 적도 없는데….”

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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