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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 글로벌 이슈 해결하는 프리미어 포럼으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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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호 05면

주요 20개국(G20) 회의에 참석한 정상과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 대표들이 25일 미국 피츠버그 컨벤션센터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제이컵 주마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펠리페 데헤수스 칼데론 멕시코 대통령,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아르헨티나 대통령,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 [연합뉴스]

착잡, 수긍, 현실 인정….
올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지켜본 서방 전문가들 말 속에서 엿보인 감정의 편린이다. 일부 전문가는 한국·중국·인도·브라질 등 신흥 12개국이 국제무대 전면에 나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실을 체념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프레드 버그스텐 소장은 25일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신흥국 등장은) 불가피하다. 신흥국들이 세계 경제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선진 7개국(G7)이나 선진 8개국(G8, G7+러시아)은 점점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되고 정치적 신뢰도도 추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브루킹스연구소 콜린 브래드퍼드 수석 연구원은 “G20이 국제 경제 협력과 다자간 의사 결정 등을 위한 새로운 틀로 자리 잡았다”고 진단했다.

피츠버그 정상회의 공동선언문 살펴보니

실제로 24~25일 미국 피츠버그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는 유엔 총회에 버금가는 의제를 다뤘다. 경제뿐 아니라 사회·환경 이슈까지 폭넓게 의논했다. 이를 바탕으로 G20 정상들은 A4 용지 23쪽에 달하는 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문의 어휘나 표현을 보면 글로벌 권력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먼저 G20 정상들은 ‘오늘날 글로벌 경제를 반영하기 위한 국제기구 현대화’에 합의했다.

“세계은행 등 다자 개발은행에서 소홀한 대접을 받고 있는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에 투표권을 최소 3% 더 부여하는 방안을 2010년 봄 회의까지 합의하기로 다시 공약한다. 2011년 1월 말까지 국제통화기금(IMF)의 쿼터(IMF 지분) 개혁을 실행하고, 쿼터를 지나치게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에서 적게 보유한 나라로 쿼터 5%를 이전하는 것을 지지한다”는 내용이다.

또 정상들은 글로벌 무대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신흥국이 대접받는 G20 체제를 “국제 경제 협력을 위한 프리미어 포럼(Premier Forum)으로 삼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2010년 6월 캐나다에서, 11월 한국에서 G20 정상회의를 개최하기로 합의한다”며 “이후에는 매년 한 차례 만날 것을 기대하면서 2011년에는 프랑스에서 정상회의를 열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와 관련, 일본 등 일부 국가에서 과거 G7이나 G8과 달리 20명이나 되는 정상이 참여하는 바람에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불평이 나오기도 했다.

이번 회의에서 특기할 또 한 가지는 미국·일본 등 선진국이 온실가스 등 환경 문제에서 신흥국들의 커진 목소리를 제어하려는 양상을 보였다는 것이다. 미국은 실무회의에서 제기하지 않은 기후변화기금(Climate Change Fund) 조성안을 갑자기 들고 나왔다. 허를 찔린 신흥국 대표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지만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을 올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기후변화회의 이전까지 논의한다는 선에서 타협됐다.

이와 함께 미국이 강하게 요구해 온 화석연료에 대한 각종 보조금 폐지가 관철됐다. 정상들은 “에너지 낭비를 부추기는 화석연료에 대한 비효율적인 보조금을 중기적으로 합리화하고 폐지해 나간다”고 합의했다. 다만 청정과 재생에너지를 개발하는 데 투입하는 보조금은 폐지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신흥국과 선진국 간 또 하나의 뜨거운 감자는 ‘균형성장’이었다. 세계 경제의 불균형 문제를 두고 양쪽의 대표선수 격인 중국과 미국이 격론을 벌였다. 미국은 중국의 내수 촉진을 위한 위안화 절상 등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하지만 중국이 구체적인 합의를 거부하는 바람에 결국 애매모호한 ‘균형성장을 위한 협력체제’를 만드는 선에서 일단락됐다. 미국의 밀어붙이는 힘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보여 준 셈이다. 전문가들은 여기서도 중국의 위력이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미국의 세계적 자산운용사인 뱅가드그룹의 로저 앨리애거 디아즈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세계 경제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선 정상들이 중국 위안화 가치를 절상하고 미국의 저축률을 높이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명시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관심을 모았던 금융 규제 문제는 은행의 임직원 보수를 장기 실적과 연계토록 하기로 뜻을 모았다. 구체적인 방안은 금융안정위원회(FSB)에 넘겼다. FSB의 권고안을 기준으로 보수체계를 개혁하고 FSB가 권고안의 이행 여부를 감시하게 한다는 것이다.

장외파생시장 계약은 2012년 말까지 중앙청산소(CCP)를 통해 결제하도록 했다. 하지만 CCP가 파생상품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유일한 수단이 아니라는 점에서 은행 거래 시스템의 추가적인 개선이 요구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정상들은 무역자유화를 위한 기존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을 이른 시일 내에 마무리 짓기로 합의했다.

한편 정상들이 너무나 다양한 의제를 논의한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전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사이먼 존슨은 “이번 G20 회의에서 정상들은 너무나 다양하고 많은 요리를 하려고 했다”며 “금융 법규 시스템 같은 의제에선 좀 더 구체적인 방안을 도출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말했다. G20 체제가 아직 완전히 자리 잡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과거 G7이나 G8처럼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도출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둬야 G20이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G20 정상들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실무 대표들로 하여금 G20 회의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다음 회의 때까지 보고하도록 했다. 결국 내년 6월 캐나다와 11월 한국에서 열리는 차기 회의가 G20 체제의 분수령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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