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베스, 유엔 연설서 오바마에 호의 … 부시 때와 딴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유엔 총회에서 예정 시간(15분)을 훨씬 넘긴 1시간 가까이 연설하면서 “기후변화 등 환경 문제의 주요 원인은 자본주의”라고 주장했다. [뉴욕 AP=연합뉴스]

“이젠 (악마의) 유황 냄새가 나지 않는다. 희망의 냄새가 난다.”

남미의 대표적인 반미주의자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유엔 총회 연설에서 이례적으로 미국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 대해 호의를 나타냈다. 집권 후 일관되게 미국을 비난해온 그로선 이례적인 발언이었다.

차베스는 2006년 유엔 총회에선 전날 연설한 조지 부시 당시 미 대통령을 빗대 “악마가 어제 여기 왔었다. 유황 냄새가 진동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엔 자신의 예전 발언을 이용해 오바마에 대한 기대감을 밝힌 것이다.

오바마가 “강대국들이 세계 평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던 유엔 총회 연설에 대해서도 차베스는 칭찬했다. 그는 오바마에게 “사회주의 진영으로 넘어와 ‘악의 축’에 합류하라”는 반농담까지 했다. 4월 미주기구(OAS) 정상회의에서 오바마와 처음 만나 악수할 때를 회상하면서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느낌이었다”고 표현했다.

그는 이날 CNN ‘래리 킹 라이브’에 출연해선 한 술 더 떠 “찰슨 브론슨의 영화와 월트 휘트먼의 시를 좋아한다. 양키스타디움에서 메이저리그 야구경기를 하는 꿈을 가졌었다”고 미국 문화를 찬양하기도 했다.

‘사회주의 혁명’을 기치로 내걸고 있는 차베스가 오바마 집권 이후 미국이 중남미의 사회주의 정권들에 대한 강경 기조를 누그러뜨리자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과 미국에 대해 우호적인 발언을 쏟아낸 것이다.

비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이 고상한 약속을 하지만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다”며 “2명의 오바마가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미국이 여전히 전 세계에서 전쟁을 선동하고 있다”고도 했다. 차베스는 “콜롬비아에 주둔한 미군이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며 철수를 요구했다.

부시에 대한 반감은 여전했다. “제발 내게는 구두를 던지지 말아 달라”며 부시가 이라크에서 수모를 겪었던 신발 투척 사건을 끄집어내 조롱하기도 했다. 그는 2002년 반 차베스 군부 쿠데타 때 부시 정권의 지시를 받은 군인들이 감금 상태였던 자신을 암살하려 했으나 설득 끝에 단념시켰다고 CNN에서 주장했다.

이충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