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초점] 잘못된 증시통계 현황·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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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부천에 사는 투자자 김인모씨는 지난달 7일 섬유업체인 (주) 갑을 주식을 샀다. 5월 5일자에 보도된 12월 결산법인들의 연결결산 실적을 보고 당기순이익이 대폭 증가한 이 회사 주식을 고른 것. 갑을 주식의 가격은 다음날 비교적 큰 폭으로 오르더니 그후 계속 미끄럼을 탔다. 증권사에 확인해본 결과 金씨는 아연 실색했다.

갑을은 당기순이익이 늘어난 회사가 아니라 순손실이 늘어난 회사라는 것이었다. 증권거래소의 잘못된 통계를 언론이 그대로 보도한 것이었다.

거래소뿐만이 아니다. 코스닥 시장을 관리하는 증권업협회, 기업들의 신용등급을 매기는 신용평가회사들, 증권연구기관인 한국증권연구원 등 신뢰성을 생명으로 하는 기관들이 잘못된 통계를 버젓이 내놓고 있다.

심지어 일부 기관들은 선진 분석기법을 소개한다는 명분으로 감사인의 감사의견까지 뜯어 고치는 일까지 생겨나고 있다.

◇ 통계오류에 대한 불감증이 심하다 = 증권업협회는 지난 봄 코스닥 등록기업들의 98년도 결산실적에 대한 보도자료를 배포한 뒤 여러차례 발표내용을 고쳤다.

맨 처음 발표한 자료엔 전자업체인 동방전자산업은 당기순이익 증가율 상위 30사중 7번째에 랭크돼있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적자전환된 기업임이 뒤늦게 밝혀져 자료를 수정발표했다.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증시 유관기관중에는 심지어 다른 기관이 만들어낸 자료를 사실 확인도 해보지 않고 그대로 통계수치를 발표하는 기관들도 있다" 고 털어놨다.

금융감독원 감독 10국의 이한구 통계분석과장은 "솔직히 거래소 등에서 발표한 자료를 믿을 수 없어 연결제무재표 등 감독에 필요한 자료들을 새로 만들고 있다" 고 말했다.

◇ 통계 가공의 문제점도 많다 = 한 회사 경리부에서 일하는 K씨는 얼마전 상장기업분석책자를 보다가 기막힌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이 알기로는 지난 96년 회사가 순이익을 냈는데 책자에는 당기순손실로 나와있는 것이었다.

공인회계사의 감사까지 직접 받았던 金씨는 곧 증권사에 연락을 했다. 증권사측의 설명은 이랬다. 상장기업분석책자는 한국신용평가와 한국신용정보 등 두 평가기관에서 만드는데 그중 한신정은 97년에 변경된 회계기준을 과거에 소급적용시켜 과거 데이터를 모두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었다.

한신정의 분석책자엔 金씨의 회사말고도 신호제지.영풍산업.유성기업 등 20개 이상의 기업실적이 당기순손실로 변경돼있다.

또 신동아화재.미창석유.전방등의 경우는 감사보고서엔 결산실적이 당기순손실이지만 한신정의 수정에 따라 당기순이익으로 바뀌어있다.

주식투자의 기본지표중 하나인 주당순이익 (EPS) 수치의 경우는 사정이 더욱 심각하다. 한신평과 한신정의 기업분석책자에 표시된 EPS는 같은 기업, 같은 해의 실적이지만 해마다 수치가 다르다.

상장기업 분석책자에 수록된 거의 대부분 기업이 마찬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 원시 통계 자료부터 잘못됐다 = 한신평과 한국증권연구원은 각각 증시개방이후 종합주가지수 등락률 자료와 88년이후 개별 상장기업의 주가등락률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해서 대학및 연구기관 등에 팔고 있다.

충남대 윤평식 교수와 홍익대 김철중 교수의 공동조사결과 두 기관의 등락률 자료 가운데 한신평의 경우 일별 등락률은 15%, 월별 등락률은 무려 22%가 사실과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 해당기관들의 변명과 주장 = 거래소.증권업협회등 유관기관들은 주로 일손 부족을 부정확한 통계발표의 이유로 들고 있다.

특히 결산실적과 같은 자료들의 경우 시의성이 강해서 언론기관들에 제때 공급하려면 자료가공 과정에서 오류를 범하기 쉽다고 거래소의 배상호 공시부장은 털어놨다.

그러나 상장기업 분석책자에서 보이는 감사보고서와 다른 통계수치에 대해서는 한신평과 한신정이 나름대로의 주장을 펴고 있다.

한신정의 분석책자 제작 담당자인 조흥민 과장은 "회계기준을 소급적용함으로써 수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문구를 분명히 책자에 사용하고있어 문제가 없다" 고 말했다.

한신평 자본시장팀의 장순국 팀장은 "한신평의 연도별 분석책자마다 동일한 회사의 같은 해 주당순이익이 차이가 나는 것은 감독원의 예규를 문자 그대로 전산 프로그램화하기 어려운 기술적인 문제도 있다" 고 털어왔다.

임봉수.김원배.주정완 기자

[전문가 의견]

*** 홍익대 경영학과 김철중 교수

주가통계 자료는 자본시장의 기초 인프라에 해당한다. 이것이 엉터리라면 투자자들은 장님이나 다름없다. 학교에서는 엉터리 강의를 하고 있는 셈이고, 더 나아가서는 자본시장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다.

2년전 동료 교수와 똑 같은 표본기업에 대해 똑 같은 방법을 적용, 주가 연구를 한 적이 있는데 서로 계산된 수치가 달랐다. 나중에 알고보니 그 이유는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기관에서 만들어낸 통계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엉터리 통계의 폐혜는 심각하다. 최근에 국내 재무관련 학회지에 발표된 83편의 논문 가운데 56편이 주식수익률 자료를 사용했다. 기초 자료에 문제가 있다면 그 논문들은 가치가 없는 것들이 되고 만다.

관련기관들은 일종의 오류 불감증에 빠져 있는듯한 느낌을 수없이 받아왔다. 미국 롱아일랜드 대학의 부설 경제연구소에서는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증시를 믿을 수 없어 자체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한다고 들었다. 증시개방화와 세계화에 역행하는 불량 통계는 반드시 고쳐져야한다.

*** 충남대 경영학과 윤평식 교수

미국의 경우 증시통계 가운데 기업의 수익률 자료는 시카고대학 부설 CRSP에서 관리하고, 재무제표 자료는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S&P)가 관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한국신용평가와 한국증권연구원에서 각자 관리하고 있다. 문제는 두 기관의 기초통계가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기준을 사용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부당국이 발전적인 차원에서 단일화시켜야 할 부분이다. 통계기관 단일화와 함께 서둘러야 할 점이 있다. 부족한 증시데이터를 빠른 시일내에 업데이트 시키는 것이다. 한국증권연구원은 코스닥주식과 우선주의 수익률 자료가 없다. 또 80년 이전 주가의 월별자료조차 없는 실정이다.

또 국내 증시통계 기관들의 통계치는 사용하기가 너무 복잡하다. S&P의 경우 자료항목이 3백08개 정도인데 비해 한신평은 9백50개에 이른다. 마지막으로 정확한 통계를 유지하려면 학계.행정계.업계 관계자들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부족한 점을 바로잡아가는 시도도 필요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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