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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집권 10년] '기름진 중국' 일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지난 24일 중국 산둥 (山東) 성의 둥잉 (東營) .넘실대는 황허 (黃河) 를 발아래 둔 장쩌민 (江澤民) 총서기의 연설은 장엄했다.

"물을 다스려 황허를 중화민족의 복 (福) 으로 만들자. " 핵심 요인 (要人) 들이 병풍처럼 둘러선 가운데 황허 시찰의 대미를 장식한 江주석의 사자후는 치수 (治水) 를 통치의 첫째로 삼았던 옛 황제를 연상시켰다.

10년 전 이날. 굳은 얼굴로 江주석이 공산당 총서기에 올랐을 때 이런 날이 오리라고 내다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천안문 (天安門) 사태로 발탁된 '천안문의 행운아' 란 비아냥만 들었다.

미국 정보기관도 고작해야 1년 정도의 과도정권을 이끌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지금 江주석의 지위는 반석처럼 탄탄하다.

중앙군사위 주석과 국가주석 자리를 보태 마오쩌둥 (毛澤東) 이후 당.정.군의 3권을 장악한 최고실력자로 위치가 더욱 공고해진 것이다.

그의 통치 아래 중국은 10년 동안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연평균 10%를 웃도는 고성장에 힘입어 중국의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 (GDP) 은 7백71달러로 89년 (1백83달러)에 비해 4배가 넘어섰다.

10년 전 두집 건너 한대꼴이던 TV보급률도 가구당 1대로 늘어났다.

자전거가 물결을 이룬 천안문 광장은 이제 승용차의 홍수로 체증을 앓고 있다.

江주석의 10년은 중국인들에게 경제적 자신감을 확고하게 심어놓았으며, 이는 안정적인 통치의 기반이 되고 있다.

江주석은 이를 바탕으로 정치.사회적 개방을 밀어붙이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시골 촌민위원회 주임들이 정부가 아닌 주민들에 의해 파면되

는 초유의 사건이 벌어졌다.

더디지만 풀뿌리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국민의 정치적 자유가 서서히 향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싼리툰 (三里屯) 유흥가 골목길엔 요란한 카페들 사이로 술과 음악.카드를 즐기는 중국 신세대들의 발길로 북적일 만큼 사회 분위기도 크게 개방됐다.

그러나 양지만큼 그늘도 깊어지고 있다.

시장경제를 위한 국유기업 개혁과정에서 노동자들이 대량 실직해 사회불안의 원천이 되고 있고, 당국의 허락없이 공산당에 대항하는 '중국 민주당' 이란 야당이 일방적으로 창설을 선포했다.

사회불안을 틈타 파룬궁 (法輪功) 등 종교세력의 조직화도 두드러지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 의 유고주재 중국대사관 폭격을 계기로 외풍 (外風) 도 거세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중국 위협론' 은 개혁.개방노선의 江주석 체제가 직면한 최대의 도전이다.

이런 역풍을 타고 보수파들의 민족주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江주석의 공산당 총서기 임기는 2002년 끝난다.

또 2003년에는 국가주석에서도 퇴임한다.

베이징 = 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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