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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힘 빼는 국세청 ‘여풍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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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는 유난히 여성 고위직이 많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때 수석 대표를 맡았던 웬디 커틀러나 칼라 힐스 전 대표도 여성이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기 싸움도 하고, 술 대결도 해야 하는 협상팀엔 남성이 많았다. 그런데 상대국 대표들과 어울리며 접대도 받다 보니 협상력이 갈수록 떨어졌다. USTR은 여성 협상가를 키우면서 이런 고리를 끊었다.

USTR식 변화가 국세청에서 일어나고 있다. 깐깐하고 능력 있는 여성들을 통해 국세청을 더 투명한 조직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24일 이지수(45·사진) 전 김앤장 변호사를 납세자보호관(국장급)으로 영입했다. 말 그대로 납세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자리다. 그는 “납세자 입장에서 일하겠다”며 “기존 조직 문화에 젖어 있지 않은 사람을 뽑은 취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또 “납세자의 권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세금을 부과하고 세무조사를 하는 단계별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한 달 내 입법예고하겠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지난달 전산정보관리관에도 임수경(48) LG CNS 상무를 임명했다. 국장급 간부에 여성이 기용된 것은 국세청이 생긴 후 임 관리관이 처음이다. 행시 출신 여성 사무관이 국세청에 처음 온 게 2003년이고, 현재 여성 과장은 4명뿐이다.

여성 중용은 외부 영입만이 아니다. 남성들만의 구역으로 여겨졌던 조사국에도 지난 7월 여성 과장이 등장했다. 안옥자(53) 서울국세청 조사1국 3과장, 홍성경(56) 중부국세청 조사2국 3과장이 주인공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다른 부처나 기업에선 이미 고위직 여성이 화젯거리가 아닌데 우리가 그만큼 시대에 뒤처져 있었다는 얘기”라며 “조직에 자극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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