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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은 웃음이다, 젊은 디자이너들의 발랄한 상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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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뉴질랜드 출신의 작가 니콜라스 라이센브리의 ‘랜드스케이프’. 골판지를 이용해 만든 튼튼한 구조물이다. 사람들이 각자 취향대로 앉거나 기대어 쉴 수 있도록 했다.


“어떤 직업이 좋을지 하나씩 상상해 보세요. 그리고 당신의 이웃과 무엇을, 어떻게 함께 나눌지 보여주세요.”

누군가 어느 날 이런 주문을 해온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대응할까. 한국과 유럽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이런 요구를 받고 다음 같은 것을 만들었다.

아빠와 아이가 함께 춤을 추거나 놀 수 있는 ‘댄싱 슈즈’. 디자인그룹 컴퍼니의 작품.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으면 날개를 움직이는 새 모양의 조명등, 두 사람이 함께 얼굴을 나란히 마주하고 쓰는 모자, 아빠와 아기가 함께 신고 춤을 출 수 있는 한 켤레의 신발…. 그들이 택한 ‘가상의 직업’엔 정원사·마법사·재단사·건축가·식물학자 등이 포함돼 있었다.

영국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 옆 스트랜드의 주영한국문화원(원장 원용기)이 요즘 어른들의 작은 놀이동산처럼 변했다. 한국디자인문화재단(이사장 김인철)이 주최하는 제5회 ‘디자인 메이드(design MADE·www.designmade.org)’ 전시장이다.

관객들은 잠시 번잡한 일상을 떠나 즐거운 유희에 빠져들었다. 누군가는 눈앞에 매달려 있는 새들의 날갯짓을 보기 위해 위해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골판지 모양의 조형물 위에 올라가 기대앉거나 누운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그들은 옆에 누운 친구와 소담소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림’을 감상하듯이 얌전히 바라보고 지나가게 하는 작품이 하나도 없었다.

개막식이 열린 22일 우연히 전시장을 찾았다는 나이지리아 출신의 영국인 다미 에니올라는 디자이너 오경민의 ‘대화’를 주목했다.. “비디오 화면에 비친 자신과 팽팽하게 대결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스토리텔링) 구도가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또 다른 관람객 아담 쿠퍼스는 “나뭇가지 패턴을 이용해 ‘가상의 식물’을 아름다운 조형물로 만들어낸 ‘보타니스트’(이장섭)와 벽이 되면서도 소파도 될 수 있는 ‘월파’ (조르디 캐누다스) 등 아름답고 실용적인 작품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자연과의 교감, 이웃과의 공감=이번 전시의 주제는 ‘셰어링 바이 디자인(Sharing by Design)‘이다. 한국과 유럽의 젊은 디자이너들이 함께했다. 한국의 디자이너 아티스트 그룹 패스트(F.A.S.T)와 매즘(MAEZM) 등 6개 팀과 해외 9개 팀이 참여했다. ‘셰어링’, 즉 공유란 주제에 대한 풀이는 조금씩 달랐다.

자전거로 새를 움직이는 조명작품 ‘플라잉 레슨’을 출품한 조민상씨는 “현대인에게 자전거 타기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보여주려고 했다”며 “인공물인 자전거로 자연에 힘을 불어넣고, 동시에 고달픈 도시인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전거와 새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표현한 것이다.

튼튼한 골판지를 조합한 ‘랜드 스페이스’로 주목 받은 니콜라스 라이센브리(뉴질랜드)는 “누구나 가장 쉽고, 편하고, 즐겁게 앉아 쉬는, 아무런 규칙이나 원칙이 없는, 그런 자유로운 형태의 쉼터를 만들어보았다”고 밝혔다.

현수진 작 ‘살아있는 화병’. 화병 표면에 이끼가 자라나도록 디자인해 자연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전시 과정도 ‘공유’=이번 전시는 운영·조직 면에서 과거 행사와 차별화를 시도했다. 지금까지는 서울에서만 열렸으니 올해 처음으로 무대를 런던으로 옮겼다. 장인기·박진우·다니엘 차니, 한국과 영국의 큐레이터 3명이 공동 기획했다. 특히 영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큐레이터 중 한 명인 차니의 동참이 전시의 폭과 깊이를 풍성하게 했다는 평가다.

큐레이터이자 디자인그룹 ‘F.A.S.T’의 멤버이기도 한 박진우씨는 “각기 문화적인 배경이 다른 한국 작가들과 외국 디자이너들의 참여로 ‘공유’에 대한 풍부하고 다양한 해석을 엿볼 수 있다는 데 이번 전시의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장인기 디자인문화재단 전시기획팀장도 “이번 전시는 지난해 주제 ‘세이빙 바이 디자인’ 의 연장선상에 있다”며 “우리 사회를 보다 더 따뜻하고 친밀하게 하는 데 디자이너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을 것”고 말했다.

디자인 메이드 런던 전시는 10월 8일까지 계속된다. 서울에서도 관련 행사가 준비됐다. 10월 5~8일 디자인문화재단 D+갤러리에서 스페인 디자인 그룹 바수라마(Basurama)를 초청, ‘버려진 것들을 위한 새로운 나눔과 공유에 대한 워크숍’이 열린다. 

런던 글=이은주 기자
사진=한국디자인문화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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