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북경회담과 우리의 대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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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남북한과 미.북의 베이징 (北京) 고위급회담으로 서해 교전 이후 한반도 정세가 중요한 고비를 맞고 있다.

서해 사건후 북한은 서해의 군사적 패배를 협상전과 정치심리전, 그리고 금강산 관광객 억류와 같은 보복성 조치로 만회함으로써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 확보를 겨냥하고 있다.

북한은 남북 차관급회담, 판문점 장성급회담, 미.북 고위급회담 등 여러 통로를 통해 서해 사건을 집중거론함으로써 협상입지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 차관급회담의 경우 이산가족문제로 인한 체제손상을 내심 우려하고 있는 북한으로서, 나머지 비료 10만t을 예정대로 7월말까지 받아내야 하는 절박성과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지연시켜야 하는 정치적 판단이 상충하는 상황에서 다음 세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첫째, 최소한의 이산가족들에 대해 생사확인.서신교환.상봉 중 한가지를 허용하되 1회성 시범사업으로 합의하는 방법.

둘째, 차관급회담에서는 이산가족 고통 해소를 위해 노력한다는 원칙만 확인하고 그 규모.시기.방법 등 구체적 사항과 절차협의는 적십자회담에 넘기기로 하고 차기 적십자회담의 날짜.장소 등에 합의하는 방법.

셋째, 회담의제인 '이산가족문제를 비롯한 상호 관심사' 와 관련, 서해 사건을 상호관심사로 제기한 다음 사과.보상을 요구함으로써 이산가족문제를 지연시키는 방법 등이다.

또한 북한은 이산가족문제와 관련, 출소간첩 송환, 국가보안법 철폐 등을 전제조건으로 제기해 회담을 지연시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이와 같은 조건을 내세워 나머지 비료수송이 완료되는 7월 말까지 회담을 공전시킬 경우 우리로서는 비료만 주고 이산가족문제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결과가 되고 만다.

또한 미.북 회담의 경우 페리의 포괄협상안에 만족치 않고 있는 북한은 핵과 미사일에다 서해 사건을 협상카드로 추가해 대담하고 공세적인 대미외교를 전개하는 한편 한.미.일 공조체제를 분열시키려 할 것이다.

북한은 이와 같은 협상력의 강화와 함께 남한 내부의 햇볕논쟁에 기름을 붓는 격으로 이산가족문제 해결 지연 카드를 내미는 정치 심리전을 병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서해 사건후 햇볕논쟁이 이미 촉발된 데다 차관급회담이 무위로 끝난다고 할 때 대북정책에 대한 우리 내부의 갈등은 폭발력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가.

첫째, 대북정책에 관한 국민적 합의 기반조성을 위해 포용정책의 재검토가 필요하다.

정부는 포용정책의 목표를 북한의 개방.개혁.대남도발 포기 등 북한 변화 유도에 두고 각종 지원과 협력이라는 햇볕을 쪼여 왔다.

그러나 포용정책이 자기들 내부로부터 체제를 와해시키려는 것으로 인식한 북한은 주민단속, 남한 등 외부로부터의 경제지원 등을 통한 체제강화에 주력하는 한편 남쪽을 향해서는 잠수정 침투.서해 도발이라는 역공을 하고 나왔다.

이는 현재 북한의 변화가 체제강화를 위한 전술적변화이지 체제수정을 위한 전략적 변화가 아님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우리는 접촉을 통한 북한 변화라는 정책목표는 합리적이기 때문에 그대로 유지하되 전략적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방법.수단에 있어서는 신축성과 다양성을 지닐 필요가 있다.

때로는 햇볕만이 아닌 바람도 보내고 필요에 따라서는 당근과 채찍을 병행하는 '조건부 포용정책' 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북한의 다차원적인 협상공세에 대비해 우리의 협상력을 제고해야 한다.

만일 북한이 이산가족문제 해결 지연전술로 나올 경우 정부는 나머지 10만t의 비료수송을 중단하는 등 상호주의원칙을 철저히 적용해야 할 것이다.

셋째, 서해에서 체면손상을 당한 북한의 보복성 도발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안보문제와 경제협력문제를 연계 추진하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정부가 이미 추진하고 있는 정경분리원칙은 남북간 정치적 화해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상호 신뢰회복 차원에서 시도해 볼 만하다.

그러나 북한이 또다시 대남 군사도발을 해올 경우 그 도발의지를 근본적으로 포기토록 하기 위해선 확고한 안보태세 구축과 함께 그들로 하여금 도발로 인한 경제적 불이익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만드는 것 또한 중요하다.

우리가 안보위협을 받을 경우 대북 식량.비료지원 및 경제협력을 중단하는 '안보 - 경협 연계원칙' 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대북정책에 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한 때다.

송영대 이대 겸임교수 .전통일원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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