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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 지도가 바뀐다] 17. 환경운동연합 참여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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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지금은 '환경운동' 이란 말에서 강력한 '시민의 힘' 이 느껴진다.

하지만 80년대만 해도 사정이 달랐다.

산업화 과정의 불순물인 공해문제가 피부에 와닿는 시절이었다.

선진국의 배부른 걱정거리 정도로만 여겨지던 포괄적 환경문제를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슈로 처음 눈뜨게 한 것은 93년 4월 결성된 환경운동연합 (환경련) 이다.

환경담론이 유행하고 주요 일간지에서 '쓰레기 줄이기' 캠페인 등을 전개하던 92년, 서울 종로 5가의 '안집' 이라는 한식집에서는 전국 규모의 환경운동단체를 설립하기 위한 일련의 모임이 있었다.

날로 깊어가는 환경문제의 심각성에 비추어볼 때 산재한 군소 환경단체를 결집하지 않고서는 효과적인 대응이 어렵다는 공감대가 지식인들 사이에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태동기에는 이시재 교수를 비롯, 김상종. 고철환. 양운진. 이경재. 송상용. 유근배. 윤재용 교수 등 일군의 학자그룹과 조두현 변호사. 김명한 판사 등 법조인, 그리고 최열.구자상.임낙평씨 등 전국의 환경운동가 그룹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환경련의 창립 배경을 이해하려면 민주화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던 80년대 초반의 공해반대운동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인간적인 작업환경을 요구하는 노동자의 목소리가 산업화의 그늘에 묻혀 무시되던 그 시절, 전국 각지에서는 노동자와 연대해 공해 추방운동을 벌이는 군소 단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단체가 현 환경련 사무총장 최열씨가 82년에 만든 공해문제연구소. 이 땅에서 공해문제를 다룬 최초의 단체인 이 연구소는 84년 울산 울산공단의 중금속 중독증인 온산병 문제를 제기하고 산업공해 문제를 다룬 서적 '내 땅이 죽어간다' (89년.일월서각) 를 발간하는 등 당국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대담한 활동을 전개했다.

이어 여성과 주부들을 주축으로 하는 공해반대시민운동협의회 (공민협) , 대학생.청년을 주축으로 하는 공해반대청년운동협의회 (공청협) 등 각 공해반대운동단체들이 훗날 환경운동연합을 이룬 주춧돌이 된다.

산재한 공해반대운동단체들 사이에서는 90년대로 접어들면서 단순한 '공해' 문제를 벗어나 포괄적인 환경문제로 운동의 쟁점을 옮겨야 한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시작했다.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라 운동의 성격도 민주화운동에서 순수한 시민운동으로 탈바꿈하게 됐다.

92년 리우 유엔환경회의는 환경련 출범의 커다란 전기라고 말할 수 있다.

당시 국가간 회의와 별도로 열린 NGO회의에 최열씨를 비롯, 이시재.이경재.고철환 교수, 이석태 변호사 등 50여 명의 지식인이 참석한 일은 전국적인 환경운동단체 설립의 자연스런 계기가 됐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환경련은 95년 본부를 서울 신문로에서 지금의 누하동으로 옮기면서 국제적인 환경단체로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환경조사국 김혜정 국장은 "안정된 민간환경센터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모금으로 대지 약 3백80평의 2층짜리 건물을 구입했다" 며 "내년에는 이곳에 5층짜리 건물을 세워 생태교육관.환경정보센터.강당 등을 갖춘 명실상부한 공익단체로 키워갈 생각" 이라고 말했다.

회원 5만3천 여명의 거대한 환경단체가 만들어 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화와 DM발송, 음악회.후원회 등을 통한 회원확보 및 모금활동은 기본이고 프로야구 OB베어스팀이 경기하는 곳에서 지리산 반달곰 살리기운동을 하거나 겨울에 환경련 회원 연예인들이 명동에서 모피 안입기 운동 등을 벌이며 회원을 확보하기도 했다.

방송으로 유명세를 탄 오세훈 변호사는 환경련 전 공동대표이자 현 환경부장관인 손숙씨가 진행하던 MBC라디오 '여성시대' 의 광고에 출연해 회원을 모았다.

현재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변호사로는 아파트 일조권소송으로 알려진 오변호사 외에 영광원전 가처분소송의 김호철 변호사,가야산 해인골프장 환경소송의 이석태 변호사 등을 들 수 있다.

학자 가운데 마산.창원 환경연합을 이끄는 양운진 경남대 교수는 환경운동을 거의 '본업' 으로 하는 열성운동가이며, 시민환경정보센터 소장인 강명구 서울대 교수는 환경련 홈페이지 (http://kfem.or.kr) 구축을 주도하며 사이버상의 환경운동을 벌이고 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지역반핵운동과 주민참여' 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딴 박재묵 교수는 환경련에서도 전공을 살려 반핵운동에 열성적이다.

'환경' 이라는 하나의 주제 하에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힘을 결집한 환경련은 정치참여를 단호히 거부한다.

언젠가 발 넓은 최열 사무총장이 총선에 출마한다는 소문이 나돌아 항의전화를 받느라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그러나 환경운동을 정책과 연결짓기 위해 회원들의 지자체 진출에는 적극적이다.

95년 첫 지자체 선거에 의사 송학선씨,치과 의사 이재용씨 등을 각각 과천시장, 대구 남구청장 등으로 추천해 조직 차원에서 선거운동에 열을 올렸던 적이 있다.

송씨는 낙선했으며 이씨는 당선돼 재선까지 했다.

손숙씨가 환경부장관으로 입각한 것에 대해서도 본부 차원에서는 일단 환영의 뜻을 밝혔으나 기존 정부의 입장에 기울지 않을까 일부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환경련은 동강살리기 운동.대만 핵폐기물 북한반입 반대운동 등 개별적 이슈에 대한 한정적 운동에서 벗어나 21세기 국가 환경 청사진을 제공하는데 힘을 쏟기 시작했다.

자연과학.인문사회 분야의 전문가 60여 명을 결집한 '21세기위원회' 를 통해 환경련만의 비전이 아닌, 보다 큰 차원의 환경운동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김국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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