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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명문고 출신은 판·검사 선호…‘신법조 파워’ 대원외고는 로펌행 많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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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법조계에서 ‘대원외고 파워’가 급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중반부터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졸업생이 95년 13명, 96년 20명, 97년 22명으로 늘어났다. 그 후 상승 곡선을 그리면서 2007년 입소한 사법연수원 38기에 46명, 지난해 39기에 50명 등 최근엔 연간 합격자가 40~50명에 달한다. 90년대 초 ‘대원외국어학교’에서 외고로 전환한 뒤 이른바 명문대 합격자가 급증한 데 따른 효과가 4~5년의 시차를 두고 나타난 것이다. 대원외고 졸업생들이 기존의 ‘법조 엘리트’들과 구별되는 특성은 무엇인지, 그리고 향후 법조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두터운 ‘글로벌 인맥’=대원외고가 과거 명문고와 뚜렷하게 대비되는 점은 외국어 중심의 특수목적고라는 것이다. 과거 명문고가 국내의 정·관·재계를 중심으로 인맥이 형성돼 있다면 외고는 고교 졸업 후 해외에서 대학을 졸업한 동문이 많다. 2000년부터 올해까지 해외 대학에 진학한 대원외고 졸업생은 700명에 달한다. 이들은 국내 법조계·정부 부처·대기업 등에 진출한 동문들과 함께 ‘글로벌 인맥’을 형성하고 있다.

아울러 대원외고 출신들의 로펌 진출이 두드러지고 있다. 최근 성적이 우수한 사법연수원생들이 법원·검찰보다 대형 로펌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과거 명문고 출신 법조인들이 법원·검찰의 요직을 거친 뒤 변호사 개업을 했다면 대원외고 출신 법조인의 상당수는 곧바로 로펌에 진출해 해외 M&A(기업 인수합병) 자문 등을 맡고 있는 것이다. 대원외고 출신인 법무법인 태평양의 정은아 변호사는 “고교 때 외국에서 살다 온 친구들이 많아 외국 문화에 익숙해질 기회가 많았다”며 “로펌에서도 외고 출신이라는 이유로 해외 업무를 맡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같이 외국어 능력과 글로벌 인맥으로 무장한 대원외고 출신들은 앞으로 법률시장이 본격적으로 개방되면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동문끼리 뭉칠 것” vs “오히려 불이익”=대원외고 출신 법조인이 급격하게 늘면서 동문끼리 뭉치는 현상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특정 학교 출신이 지나치게 많아지면 아무래도 위화감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대원외고 법조동문회는 올 초 서울 강남의 한 퓨전일식당을 빌려 정기 모임을 가졌다. 이 모임에는 100여 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문 뭉치기’가 재연될 것이란 우려는 과거 특정 고교 출신들이 검찰 등의 요직을 독과점했던 데서 기인한다. 어느 지역 출신에, 어느 고교를 나왔는지가 인사의 기준이 되면서 타 고교 출신들의 박탈감이 심했다. 한동대 이국운(법학) 교수는 “과거 명문고가 가난한 지방 인재들의 신분 상승 코스였다면 외고 돌풍은 서울의 특정 계층을 중심으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그는 “선진국에도 명문고가 있지만 철저한 인문학 교육을 통해 존경받는 리더를 생산해 낸다”며 “대원외고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대원외고 출신 법조인들은 이 같은 시각을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대원외고를 나온 한 변호사는 “다른 학교도 동문회는 다 하는 것 아닌가. 대원외고 졸업생들이 모임을 갖는다고 해서 유독 우려스럽게 보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원외고 출신 김윤상 영동지청장은 “앞으로 법조에 대원외고 후배들이 늘어나면 너무 많다는 이유로 오히려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능력이 뛰어나도 대원외고 출신이라는 이유로 요직에서 배제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외고 돌풍이 문제라면 한국 사회와 교육 시스템의 문제이지 외고 출신들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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