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칼럼] 코소보전쟁 편향적 보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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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가 내건 공습 중지의 필요조건 등을 세르비아가 모두 받아들임으로써 코소보 전쟁은 마침내 끝났다.

나토의 승리는 처음부터 예견됐었다.

나토가 무력에서 세르비아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는 사실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전쟁이 알바니아계 코소보 주민들에 대한 세르비아의 '인종 청소' 로 인해 일어났으므로 나토는 의로운 싸움이라는 명분을 지녔고, 자연히 코소보 주민들의 귀환과 안전보장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추구할 수 있었다.

반면 세르비아 군대를 인도한 것은 왜곡된 민족주의적 감정뿐이었다.

자기 사회의 소수파에게 집단적 추방과 강간.살해를 저지르는 군대가 전투력이 강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나토는 뒤에 세르비아가 부분적 승리라고 주장할 만한 타협이 나토에는 정치적 패배를 뜻하고, 그런 패배에서 나올 악영향들은 무척 크며, 따라서 나토에 열린 길은 완전한 승리뿐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예상치 못했던 것은 세르비아가 저항다운 저항을 하지도 못한 채 갑작스럽게 무조건 항복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과 앨 고어 부통령을 빼놓고 많은 전문가.정치 지도자들이 전쟁을 제때 끝내려면 지상군 파견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었다.

아쉽게도 그동안 우리 신문들은 대부분 부정확하게, 그리고 편향적으로 코소보 전쟁을 보도하고 논평했다.

기사들은 거의 모두 세르비아에 동정적이었고 나토에는 적대적이었다.

그것들은 이번 전쟁의 원인을 무시한 채 나토의 공습이 주권국가에 대한 침범임을 강조했고, 세르비아의 참혹한 인종 청소는 거의 얘기하지 않는 대신 나토의 오폭에 의한 피해는 크게 다뤘다.

나토 전폭기들은 세르비아 전역의 갖가지 목표들을 거침없이 폭격했다.

세르비아의 저항은 뜻밖에 약해 날마다 수백회의 출격을 하면서도 나토측 손실은 전투기 한대를 잃은 것 뿐이었다.

그나마 전투기 조종사는 특공대에 의해 이내 구출됐다.

그러나 우리 신문만을 읽은 독자들은 누가 이기는지 알기 어려웠을 터고, 편향이 지나치게 심했던 몇몇 신문 독자들은 오히려 꿋꿋한 세르비아가 분열되고 비겁한 (?) 나토를 이기고 있는 줄로 알았을 터다.

특히 편향이 심했던 부분은 '나토의 분열' 이었다.

동맹국의 지도자가 좀 회의적인 발언이라도 하면 그것이 자기 국민을 무마하기 위해 나온 것이 분명한 데도 우리 신문들은 나토의 단결에 이상이 있다고 보도했다.

실은 이번 싸움은 나토가 예상과 달리 아주 단결이 잘 된 기구임을 보여주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프랑스.이탈리아.독일, 그리고 헝가리가 어려운 국내 사정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주도아래 적극적으로 작전에 참여한 것이었다.

유일한 예외는 세르비아와 인종.종교가 같고, 이슬람교국인 터키와 앙숙인 그리스가 터키로부터 발진한 전폭기들의 영공 통과를 거부한 것이었다.

그런 부정확하고 편향된 기사들의 뿌리는 물론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반미 (反美) 감정이다.

많은 나라들에서 반미적 태도가 세련된 지식인의 징표로 여겨지므로, 우리 사회의 반미 감정이 크게 이상한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에겐 반미 감정이 누리기 어려운 사치라는 사실이다.

북한과 기술적으로는 아직도 전쟁 상태고 미군의 주둔으로 북한의 도발을 막고 있는 우리로선 시민들의 반미적 태도가 이로울 수는 없다.

줄곧 세르비아를 응원하고,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려고 이번 전쟁을 일으켰다는 허황된 음모론까지 들먹이며 나토와 미국을 비판한 언론인들은 과연 생각해 보았을까, 나토가 코소보에서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세르비아와 타협했을 경우 북한이 여기서 어떤 교훈을 끌어내고 우리에게 어떤 태도를 보일까?

복거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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