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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 日 교세라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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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영인' '경영의 신 (神)' …. 교세라의 이나모리 가즈오 (稻盛和夫.67) 명예회장의 이름 앞에 붙어다니는 수식어는 한 둘이 아니다.

그는 손대는 사업마다 성공을 거뒀다.

게다가 이익과 도덕, 합리와 윤리를 조화시키며 사업을 확장했기 때문에 '거룩한 기업인' 으로 존경받고 있다.

한편 씨없는 수박을 만들어낸 고 (故) 우장춘 박사의 넷째 사위로 한국과도 결코 무관한 처지가 아니다.

그는 또 승적 (僧籍) 을 지닌 임제종 (臨濟宗) 의 수도승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97년 위암수술을 받은 뒤 교토 (京都) 의 엔후쿠지 (円福寺) 로 들어가 불도를 닦았다.

이전에도 중대한 결심을 할 때는 자주 절에서 명상을 했다.

지난해초 다시 경영에 복귀했으니 지금은 '겸업 스님' 인 셈이다.

[만난사람=이장규 일본 총국장]

- 한때 경영 일선을 떠나 삭발하고 절에 들어가셨는데 정말 속세를 떠날 생각이셨습니까.

"그런건 아니었고…. 65세가 되고 보니 여생이 그리 길지 않다고 느껴지더군요. 고작 10~15년이라고 생각해 보니 이젠 죽을 준비를 제대로 해야겠다고 실감했습니다. 죽음이란 '제2의 인생여로' 인데 여행길 떠나기 전에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마음의 준비를 위한 공부가 목적이었지 중이 돼 절에 계속 처박혀 있을 작정은 아니었습니다. 세상을 위해 미력이나마 더 기여해야지요. "

- 또다시 절에 들어갈 계획이 있으신지요.

"지금은 없지만 앞으로 또 공부가 필요하다고 느끼면 언제든지 들어갈 겁니다. "

총 7천억엔대의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그룹을 일궈놓고 정작 죽을 준비를 하고 있다니. 어쩌면 이같은 무사무욕 (無私無慾) 의 자세야말로 약육강식의 비즈니스 세계를 이겨나온 비결이었을지 모른다.

- 회장께서는 기업경영에서 이익추구만이 아니라 공공성을 강조해왔습니다.

이런 경영철학이 이익을 우선시하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어떻게 가능합니까.

"일본에는 '팔아서 이익, 사서 이익'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정한 상거래는 거래 당사자가 모두 이익을 얻는 것이라는 일본 상인들의 철학을 담은 말이지요. 그렇다고 내가 자선사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주와 종업원을 위해 당연히 이익을 추구해야지요. 그러나 상대방이나 사회에 대한 이익도 배려해야 한다는 겁니다. "

- 그래도 요즘은 서구식 합리주의가 판치지 않습니까.

"꼭 옳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대만 치메이 (奇美) 그룹의 쉬원룽 (許文龍) 회장의 얘기로 답변을 대신하지요. 그는 낚시가 취미인데 늘 미끼를 두개씩 단답니다. 한번에 두마리를 잡으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니랍니다.

한마리만 잡고 미끼 하나를 떨어뜨린다는 거예요. 그래야 남은 물고기들이 먹고 살면서 불어나 다음번 낚시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 얘기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기업도 그런 마음으로 해야 성공하는 겁니다. "

동양적 경영철학을 고집하는 그에게는 서구식 합리주의.과학주의가 영 구미에 맞지 않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그는 고도의 과학기술을 통해 성공한 장본인이다.

아폴로 우주선의 부품을 만들 정도이므로 기술수준은 세계 최첨단이다.

또 조직을 세밀하게 쪼개 독립채산제로 움직이게 하는 그의 '아메바식 경영' 도 일본식 집단주의보다 합리주의에 입각한 인상을 풍긴다.

그 양면성에 대해 물었다.

- 교세라는 몇명 단위의 그룹이 각자 독립채산제로 활동해 전체적으로 이익을 내는 아메바식 경영으로 유명합니다. 회장의 경영철학은 다분히 일본적인데 비해 실제 경영방식은 전통적인 일본식과는 성격이 다른 것 같은데요.

"일본식이냐 아니냐를 떠나 문제는 경영의 효율입니다. 기업이 점점 커지면 손해보는 사업도 그냥 끌고가는 경우가 많아집니다. 그러나 아메바경영을 하면 기업의 구석구석 채산을 맞출 수 있기 때문에 비효율을 없앨 수 있습니다.

또 대기업 특유의 관료주의를 예방하고 늘 벤처기업다운 활력을 유지할 수 있지요. 한국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재벌문제도 결국 이런 점과 무관치 않다고 봅니다. 대기업이 적자부문을 계속 끌고가는 것은 경제 전체에도 매우 위험합니다. "

- "지금은 일본기업이 미국기업을 배워야 할 차례" 라고 하셨다는데 무얼 배워야 한다는 겁니까.

"미국기업의 창의성입니다. 특히 컴퓨터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미국기업들은 출중한 재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이 도저히 흉내내기 어려울 정도지요. 일본인을 비롯해 동양인은 무엇인가 근원이 있어야 그를 기초로 개량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반면 서양인들은 무 (無)에서 새로운 개념을 창출해내는 재능이 있습니다.

이리듐 사업이 좋은 예지요. 그러나 차근차근 쌓아가는 것이 동양인의 장기이므로 이를 살려가야 합니다.

서양에서 개발된 첨단기술을 효율적으로 실용화하면 나름대로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에도 아시아는 세계의 생산기지로서의 위치를 유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 "

- 회장께서는 일관성있게 정부의 권한축소를 주장했는데 지금까지의 행정개혁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그렇게 정부를 공격해도 사업에 지장이 없습니까.

"비판이 싫겠지만 아직까지 무슨 압력을 받아본 일은 없어요. 아무튼 일본정부의 행정개혁은 아직 멀었어요. 진정한 의미의 자유경제라고 할 수 없을 정도지요. 여러가지 업종에서 신규진입의 자유가 없습니다. 규제완화라고 해봤자 국철 (國鐵) 을 JR로, 전신전화공사를 NTT로, 전매공사는 재팬다바코 (JT) 로 민영화한 정도가 고작입니다. 개혁을 하려 들면 지금까지 보호받아온 기업이나 정치인이 저항하곤 합니다. 또 신분보장의 특혜를 누려온 일부 노조들도 반대하지요.

그러나 개혁을 하지 않으면 일본의 번영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

- 일본의 개혁이나 변화의 속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외부에서는 너무 느리다는 비판이 많은데요.

"그 말에 동의합니다. 개혁의 스피드가 잘 붙지 않는 것이 일본경제의 큰 문제입니다. 경영인들이 용기가 없어서인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어요. "

- 한국은 변화가 너무 심해 문제입니다.

" (웃으며) 이해가 갑니다. 아시아에는 두명의 출중한 정치가가 있다고 봅니다. 한명은 한국의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이고 다른 한명은 대만의 리덩후이 (李登輝) 총리입니다. 金대통령은 역사.철학.문화 등 다방면에 걸쳐 훌륭한 식견을 갖추고 있는 지도자라고 봅니다. 게다가 강력한 리더십도 있지 않습니까. 잘 발전할 수 있을 겁니다. "

대화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한국으로 넘어왔다.

이나모리 회장은 정부의 간섭과 규제를 비판하면서도 의외로 한국의 관 주도 개혁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한국 정부는 규제완화를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재벌 해체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기업문제에 대한 정부의 강제개입을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 정부의 재벌정책은 맞는 방향이라고 봅니다. 시장 전체가 소수 재벌에 의해 조종당하는 것을 막지 않으면 자유시장원리나 공정경쟁의 룰을 지킬 수 없습니다. 결국에는 국민에게 불이익이 돌아가게 되지요. 그런 의미에서 재벌규제나 개혁을 추진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 재벌을 약화시키는 것인지, 강화시키는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만일 결과적으로 재벌의 힘을 강화시키는 쪽이 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

- 같이 경제위기를 겪은 나라이면서도 한국은 국제통화기금 (IMF) 의 지도를 충실히 따른 반면 말레이시아는 IMF에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두 나라 모두 경제가 회복세에 들어섰습니다.

도대체 누가 맞는 것입니까.

"한국이 맞습니다. IMF를 따르는 것이 당장 괴로울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국제신용이 높아져 외자유입을 촉진할 수 있습니다. IMF를 외면하면 국제금융시장에서 신용도를 높이기 어렵습니다. 장기적으로는 브레이크가 걸릴 수 있지요. "

정리 = 남윤호 특파원

[약력]

▶32년 규슈 (九州) 가고시마 (鹿兒島) 출생 ▶55년 가고시마대학 공학부 졸업 교토 (京都) 의 쇼후 (松風) 공업 입사 ▶58년 쇼후공업 퇴사 ▶59년 교토세라믹 설립 ▶65년 미국 우주선 아폴로의 부품 납품 ▶82년 교세라로 상호 변경 ▶83년 카메라회사 야시카 합병 ▶84년 DDI설립, 통신사업 진출 이나모리재단 설립 ▶87년 간사이 (關西) 셀룰라전화 설립 ▶ 90년 콘덴서메이커 AVX합병 ▶93년 일본이리듐 설립 ▶94년 DDI포켓기획. 호텔교세라. DDI간사이포켓전화 등 설립 ▶97년 위암 수술 후 교토의 엔후쿠지 (円福寺)에서 불교수도 승적 (僧籍) 받은 뒤 환속 ▶현재 교세라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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