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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학습놀이] 엄마는 ‘교구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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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엄마표 교구’는 자녀의 특성을 가장 잘 아는 엄마가 만들어 창의성과 사고력 발달에 도움을 준다. 엄마가 만든 교구를 자랑하고 있는 배문수·문일 형제와 강중현군(왼쪽부터). [김진원 기자]

강중현(화성 금곡초 3)군은 태어나 지금까지 남들의 부러움을 한몸에 받아왔다. 특별한 교구를 가졌기 때문이다. 친구들도 중현이의 교구를 가지고 놀기 위해 하루가 멀다 하고 집을 찾아온다. 교육 선진국에서 들어온 유명 교구가 아니다. 세상에 하나뿐인 ‘엄마표 교구’다. ‘중현맘’으로 더 유명한 엄마 한지연(36·화성시 반송동)씨는 자신의 블로그(blog.naver.com/gks00818)에 교구 만드는 방법을 공개해 연일 엄마들의 방문이 줄을 잇는다. 얼마 전에 이 비법을 모아 『우리 아이 입학 전 수학공부』라는 책까지 냈다. 배문일(6)군은 엄마 박자연(31·서울 동대문구)씨가 만들어준 캐릭터 한글 교재로 일찌감치 한글을 뗐다. ‘우리 집 학교 엄마 선생님(cafe.naver.com/teachermommy)’ 카페 운영자인 박씨는 전직 고등학교 선생님. 지금은 교재와 교구까지 직접 개발하는 문일·문수(3)의 엄마샘이 됐다.

이들은 “아이 교육을 위해서라면 비싼 교구도 망설임 없이 구입하는 엄마들이 많다”며 “아이에게 가장 좋은 건 엄마가 직접 만들어준 교구”라고 강조했다. 아이의 장단점, 성격, 공부 스타일을 가장 잘 아는 것이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에게 가장 적합한 교구를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도 엄마도 사고력 커져

남들이 다들 한다고 해서 무턱대고 교구 만들기에 덤벼들었다가는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아이에게 무언가 만들어 주고 싶은데 무엇부터 해줘야 할지 모르겠거나 이것저것 생각하기 귀찮다면 일단 ‘모방’부터 시작한다.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에서 선배맘들의 실패·성공담이 담긴 노하우를 습득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고수가 될 수 있다.

엄마들이 직접 개발한 교구 도안을 파일 형식으로 올려놓은 경우도 많다. 그대로 내려받아 프린트해 자르기만 하면 된다. 만드는 과정과 활용법을 사진까지 첨부해 설명해 둬 알찬 사이트만 찾으면 해결된다.

박씨가 필수 준비물로 꼽은 재료는 복합기와 코팅기. 한씨는 “펠트와 일명 찍찍이로 불리는 벨크로 테이프만 있으면 못 만들 게 없다”고 설명했다. 중현이의 인지발달을 위해 돌 무렵 펠트로 만든 농장은 지금 사용할 정도로 튼튼하다.

박씨는 “엄마표 교구를 활용하다 보면 아이는 물론 엄마의 사고도 확장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의 성향과 상황에 따라 교구를 수정하거나 활용법을 달리하다 보면 융통성도 생기게 된다는 것. 한씨는 “빨랫줄에 음표를 걸어 음악 공부도 하고, 영어 단어를 매달아 문장 만들기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구 하나만 잘 만들어도 팔방미인처럼 씀씀이가 많다는 얘기다.

학습 도구보다 활용법 중요해

취학 전후 또래가 엄마표 교구를 활용하기에 적기다. 한씨는 “아이에게 논리력이나 판단력이 생겨 국어·영어·수학·과학 등 전 교과 학습에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두 사람은 “이론으로 배운 것을 교구로 직접 만져보고 경험해 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엄마표 교구 활용법”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중현이는 연극놀이를 자주 한다. 책을 읽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연극을 만드는 것. 인원이 부족할 때는 친구들도 초대한다. 책 내용을 요약하고 대본을 직접 쓴다. 등장인물의 특징을 살려 그림으로 그린 후 나무막대만 꽂으면 배역이 완성된다. 각자 역할을 정해 무대에 올린다. “한글 공부를 하면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자기들끼리 구성을 짜고, 극본도 쓰고 알아서 다 해요.”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한씨는 이 방법이 논술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과학책에서 온도계의 원리를 배운 후 색지를 이용해 직접 온도계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수은 부분을 위아래로 움직이게 해 중현이가 온도 변화를 경험해 볼 수 있게 했다. 박씨는 명화 카드를 가방에 넣고 다닌다. 명화 한 작품씩을 작게 프린트한 후 코팅했다. 그림 뒤에는 작가 이름과 제목을 붙였다. 문일·문수 형제는 이 그림 카드로 같은 색 찾기, 비슷한 그림 찾기 등의 놀이를 한다. “미술관에 갔는데 저도 모르는 그림의 제목이랑 작가를 맞히더라고요. 놀이처럼 즐겼는데 아이에게 도움이 됐나 봐요.”

주의할 점도 있다. 아이가 교구를 가지고 놀 때 하나라도 더 가르치고 싶은 엄마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 교구가 놀이가 아닌 학습이라고 생각하면 거부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러운 유도가 중요하다. 교구는 아이들에게 장난감이면서 교육 재료여야 한다. 아이가 자는 사이 뚝딱 만들어 놓거나 주도적으로 만들기보다 만드는 과정을 아이가 지켜보게 하고 “이게 뭐야?”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 등의 대화를 하며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글=박정현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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