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이 우리를 떠보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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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북한 경비정들이 연일 서해의 북방한계선 (NLL) 을 넘어 우리측 바다를 침범하고 있다.

지난 7일 처음 월선 (越線) 한 데 이어 9일에는 남하 저지에 나선 우리측 경비정과 충돌하는 사고까지 일어났으니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자칫 무력충돌이 벌어지는 불상사가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서해 연평도 부근 해상에서는 97년에도 남북한 경비정들이 함포사격을 주고받은 일이 있고, 북한 경비선의 북방한계선 침범은 지난해만도 30여차례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이번 도발은 북측이 자기측 어선보호를 구실로 남한 당국의 대응자세를 '시험' 해보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는 점에서 한층 냉철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경계선 침범은 특히 앞으로 열흘이면 남북한 차관급회담이 열리는 데다 정부와 재계.국민의 동포애가 담긴 막대한 양의 비료가 북한으로 한창 수송 중인 시점에 벌어졌다는 점에서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또 동해상에서는 금강산 유람선이 오가고 있지 않은가.

그제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과 임동원 (林東源) 통일부장관이 남북회담이 장관급 또는 그 이상으로 격상될 가능성을 언급하던 시점에 북한은 거꾸로 우리 바다를 침범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 국민을 적잖게 헷갈리게 하는 일이다.

정부는 북의 이런 행위를 어떻게 보고 있으며 어떤 대응을 할 것인지 국민에게 설명해야 하지 않겠는가.

북한의 의도에 대해서는 지난 53년 유엔군사령부가 임의로 설정한 북방한계선을 차츰 무효화하려 한다는 분석부터 한국측의 대응자세 시험, 또는 단순한 자기측 어민보호.탈북방지 차원이라는 등 여러가지 추측이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의도가 어디에 있든 우리로서는 기존 경계선을 단호하게 지키는 것이 더 강도높은 도발을 예방하는 첩경이라고 믿는다.

비록 북한이 정전협정에 없다는 이유로 북방한계선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나 92년 발효된 남북기본합의서가 '쌍방이 관할해오던 구역' 을 서로 인정하기로 한 점 등으로 보아 이번 경계선 침범은 명백히 북한측의 합의위반이자 도발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런 사태를 맞아 정부가 북한에 대해 지나치게 유화적인 자세로 일관한다면 국민들은 헷갈리고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북한에 대해 할 말은 하고 따질 것은 따져야 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남북이 인접한 근해에서 우발적인 무력충돌 등을 막기 위한 평화정착 방안이 강구돼야 할 것이다.

남북간에는 올들어 장성급 접촉이 비공개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거니와, 논의대상을 해상으로까지 확대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임박한 차관급 회담에서 의논해도 좋을 것이다.

이번에 직접적인 계기가 된 꽃게잡이 문제만 해도 남북한이 머리를 맞대고 협상해 장차 양측 어선이 같은 구역에서 어울려 조업을 하게 된다면 얼마나 바람직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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