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세종문화회관.예술의전당, 자체기획 '속빈강정'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 등 주요 음악공연장들의 자체 기획공연은 예년에 비해 부쩍 늘고 있으나 내용이나 수준 면에서는 '부실' 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관 일변도에서 탈피해 공연장의 위상도 높이고 수익도 올리겠다는 취지에서 시작한 기획공연이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있는 것. 기획공연 비율을 높이기 위한 실적 쌓기에 급급한 나머지 연주단체나 기획사들의 대관공연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무대만 양산하면서 관객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기획' 이라면 특정한 주제나 아이디어를 내세우는게 당연한데도 프로그램을 연주자에게 일임하고 연주자 선정만으로 끝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술의전당의 경우 청소년음악회.교향악축제.실내악축제.세계합창제.오페라페스티벌 등 굵직한 행사와 '유망신예 초청연주' '재외 유명 연주자 시리즈' 외에 올해부터 '한국의 연주가' '영재 콘서트' '베토벤과 친구들' 등이 신설됐다.

지난해 신임사장 취임사에서 기획공연의 비율을 대폭 늘이겠다고 밝힌데 따른 것. 예술의전당 운영계획도 '기획된 주제에 입각한 기획공연과 기획주제에 맞는 대관공연에 치중한다' 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제목에서 알 수 있듯 거의가 특색 없는 연주자 중심의 시리즈에 불과하다.

산하단체나 상주단체 없이 한정된 예산으로 기획다운 기획을 기대하기는 애초부터 힘들다.

기획력이 돋보였던 것은 지난 4월초에 열린 '괴테 콘서트' 정도가 고작이다.

연주자 선정도 실력보다 협찬기업 동원 능력을 감안한 것이라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단적인 예로 최근 예술의전당 주최의 한 기획공연의 경우 관객 1천5백77명 중 유료관객은 68명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모두 협찬사가 제공한 초대권 소지자들이었다.

기업 후원은 어디까지나 프로그램의 질을 내세워 공연장 주도로 이끌어내야 하는 법이다.

세종문화회관은 많은 산하단체를 거느리고 있으면서도 이를 활용한 새로운 '기획' 이 눈에 띄지 않는다.

H.O.T나 패티김 등 대중가수 초청공연을 대폭 늘여 돈벌이에 나선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극장이 자기 색깔을 분명히 하면서 대관보다 기획의 비율을 높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동안 외국 교향악단 내한공연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있던 국내 아티스트들에게 무대를 제공해 주는 것은 예술가 후원이라는 극장의 기능에도 부합되는 일이다.

하지만 부실 기획공연이 양산되면서 결국 공연장의 '명성' 만 믿고 음악회를 찾는 관객들이 결국 피해를 본다.

기획공연은 공연장의 '얼굴' 이다.

카네기홀은 기획공연이 아닌 음악회 프로그램에는 반드시 '카네기홀과는 무관한 공연' 임을 명시하도록 되어 있다.

그만큼 기획공연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크다.

프로그램이나 관객 동원 면에서 대관공연에 크게 뒤지는 기획공연이라면 공연장이 흥행에 유리한 어린이날. 어버이날. 여름방학이나 주말 오후를 선점하면서 대관마저 어렵게 만든다는 일선 연주단체나 공연기획사들의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