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칼럼] 노(NO)가 없는 충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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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최근 김대중 (金大中) 정부가 연타 (連打) 를 당하고 있다.

장관부인 옷 사건, 50억원 선거자금 시비, 개각 비판론 등이 줄줄이 터지고 있다.

일마다 민심과는 동떨어진 대응이 나오고 제대로 수습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불과 집권 1년 몇개월만에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물론 궁극적으론 다 대통령의 책임이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엔 집권세력 내부에 '충성스런 반대자' 가 없는 것도 주요 원인인 것 같다.

'그건 안됩니다, 그렇게 하시면 큰일납니다' 하는 소리가 집권측 내부에 없기 때문에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막는 일이 자꾸 터지는 것이다.

지금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옷 로비사건만 해도 처음부터 제대로 조사하고 처리했던들 사태가 이렇게까지 확대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의 처리과정에서 가급적 대통령에게 심려를 덜 끼쳐드리고, 파문이 적도록 좋게좋게 보고하고, 좋게좋게 처리지침을 건의한 것이 오늘의 상황을 부른 게 아닌가.

참모 중 누구라도 문제의 본질을 간파하고 "대통령님, 그렇게 하시면 큰 탈이 날 수도 있습니다" 고 방향을 틀었던들 사태는 많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옷 로비사건이 뭔가.

이 사건은 단순한 뇌물사건이나 누구의 명예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고관부인들이 몰려다니며 일반국민들은 꿈도 못꿀 호화쇼핑을 하고, 그런 자기네끼리의 사회에서 서로 봐주고 아첨하고 질시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이번에 만천하에 공개돼 버린 것이다.

20~30년 뼈빠지게 근무해도 마누라에게 라스포사 구경 한번 못시킨 월급쟁이의 분노나, 박봉의 공무원들이 위에서는 처먹는데 나라고 못먹을소냐고 독심 (毒心) 을 품을 가능성을 생각있는 참모라면 그때 이미 대통령에게 진언했어야 옳았다.

엘리트라는 참모들이 왜 그때 말을 하지 않았을까. 더 기막힌 것은 이렇게 해서 김태정 (金泰政) 씨의 법무부장관 기용으로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이미 검찰파동때 그의 직 (職) 을 떼는 게 정부나 본인을 위해서도 좋았던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그런 金씨를 장관에 기용한다면 금방 말썽이 일 것은 대통령 자신도 알았을 것이요, 참모들도 다 알았을 것이다.

더구나 金씨 부인이 옷 사건에 휘말려 있지 않았는가.

그런 金씨를 기용할 때 당연히 '아니되옵니다' 는 소리가 있었어야 했던 것이다.

결국 누구도 대통령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고, 그 결과는 오늘의 이런 재앙으로 온 게 아닌가.

50억원 선거자금 보도에 1백1억원짜리 고소를 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졸렬한 대응에 대해 "이건 오히려 우리에게 불리한 결과가 오기 쉽습니다" 고 누군가 나서서 말려야 했지 않겠는가.

그랬던들 지금과 같은 여론의 지탄은 없었을 것이다. 유종근 (柳鍾根) 지사 문제만 해도 지난번 말썽때 그의 경제고문직은 떼는 게 순리였을 것이다.

충성스런 참모가 있었던들 민심을 정확히 보고하고 그런 건의를 당연히 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릴까봐, 대통령이 그를 총애하는데 하는 생각이 앞서서 그런 건의를 못했던 게 아닌가.

집권자들은 으레 사람 기용의 최우선기준을 충성심에 둔다고 한다.

金대통령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金대통령의 용인 (用人) 방식은 가까운 사람, 믿는 사람을 더 지속적으로, 더 중용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충성 위주의 기용엔 함정이 있으니 곧 공직풍토를 예스맨화 (化) 하기 쉽다는 점이다.

충성 기준 기용은 곧 충성경쟁을 부르고 이어 무조건 복종 - '심기 (心氣) 보좌' - 아첨으로 발전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옷사건에 대한 사직동팀의 발표가 대통령 러시아 방문 직전에 나온 것도 외국에 나가는 대통령에게 국내문제로 심려를 끼쳐드려서는 안되겠다는 조기진화용이었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그런 '충성' 이 오히려 일을 그르쳐 사태확대와 여론비난을 불렀다는 설명이다.

진정한 충성은 무조건 복종이 아니다.

아첨은 더욱 아니다.

설사 대통령심기를 건드리고 미움을 받더라도 대통령이 잘 하도록, 나라 일이 잘 되도록 보좌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충성의 최상급 형태는 '지당하옵니다' 가 아니라 '아니되옵니다' 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사건을 보면 金정부에 과연 '아니되옵니다' 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이 난국을 헤쳐나가자면 소신과 줏대를 가지고 필요할 때 '아니되옵니다' 고 할 수 있는 참모가 있어야 한다.

좋은 참모를 못쓰면 좋은 대통령이 되기 어렵고 참모가 그르친 일도 결국은 그런 참모를 쓴 대통령의 책임이 된다.

송진혁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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