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외선 필터·필름으로 민들레를 촬영하니 꿀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는 표시가 뚜렷이 나타났다. 그 선이나 점은 찾아온 곤충에게 꿀이나 꽃가루가 많은 쪽으로 가는 길을 가리키는 표지판이요, 착륙을 유도하는 활주로인 셈이다.
우리만 꽃을 보는 건 아니다. 지구상에 피어나는 약 25만 종 이상의 꽃이 간절히 그들을 바라봐 줬으면 하는 관객이 있다. 꽃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손님은 그들의 생존과 번식을 도와주는 사랑의 밀사, 바로 곤충이다. 식물이 걸어가야 할 생의 행로에서 자손 퍼뜨리기에 해당하는 꽃가루받이(受粉)에 가장 큰 구실을 하는 곤충을 불러들이기 위해 꽃들은 안간힘을 쓴다. 대부분의 곤충이 후각기능이 고도로 발달했기에 꽃들은 유인책으로 향기를 뿜어낸다. 많은 곤충이 또한 뛰어난 시각기능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꽃들은 자신들의 섹스를 도와줄 곤충을 유혹하려 색(色)을 쓴다.
곤충은 무슨 색을 좋아할까. 꽃들은 궁금하다. 곤충의 눈은 인간과 매우 다르고, 색상을 인식하는 것도 판이하다. 영국 식물학자 데이비드 애튼보로는 『식물의 사생활』에서 “곤충은 사람이 전혀 볼 수 없는 자외선을 감지할 수 있어서 곤충의 시각인식 방법을 좀더 잘 이해하려면 자외선을 감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물을 보아야 한다”며 특수한 필름과 필터를 사용하면 가능하다고 썼다. 자외선을 통해 보면 꽃잎에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일종의 무늬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사진가 김정명씨는 이 방법에 착안해 최근 벌과 나비가 보는 한국 야생화 수백 점을 찍었다. 우리나라 토종 꽃을 촬영한 최초의 자외선 꽃 사진이다. 육안으로는 꽃잎에 아무런 표시도 발견할 수 없었던 노랑꽃창포는 자외선 필름으로 촬영하니 꿀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는 표시가 뚜렷이 나타났다. 그 선이나 점은 찾아온 곤충에게 꿀이나 꽃가루가 많은 쪽으로 가는 길을 가리키는 표지판이요, 착륙을 유도하는 활주로가 되는 셈이다.
쌍을 이룬 위쪽 사진들 중 우리 눈에는 흑백으로 보이지만 낯선 색, 낯선 패턴을 이룬 것이 바로 벌과 나비가 보는 세계다. 자외선 사진으로 관찰하니 노랑제비꽃·동의나물·물싸리는 같은 노란 꽃이라도 꿀점이 각각 달랐다. 각시수련·제라늄·쥐손이는 인간이 보는 꽃 색과 꽃 종류마다 차이가 났다.
김정명씨는 “사람이 볼 수 없는 꽃의 세계, 벌과 나비가 보는 꽃이 너무 궁금해서 자외선 사진을 찍게 됐다”고 했다. “인간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세계 앞에서 우주와 자연의 신비를 새삼 느꼈다”는 그는 “이번 사진작업으로 꽃이 번식을 위해 치열하게 진화하며 나름대로 투쟁해왔기에 동물보다 생존에 더 성공한 유기체라는 걸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재숙 기자
‘야생화 사진가’ 김정명씨는
그는 그렇게 찍은 사진을 소재로 15년 동안 ‘한국의 야생화’란 제목으로 달력을 내고 있다. 같은 야생화라도 해마다 주제를 달리한다. 예컨대 2009년 달력의 주제는 ‘꽃가루받이의 신비’다. 여기 소개한 ‘보이지 않는 꽃의 세계’는 내년도 달력으로 제작돼 다음 달 초 선보일 예정(문의 02-765-3520)이다. 현재 경기도 용인시 백암면 한택식물원에서 전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