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이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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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호 10면

아내는 얼마 전 이사했다. 남편도 하루 연차 내고 회사를 쉬면서까지 나름 아내의 이사 정국에 참여했지만 보조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 역시 이사는 아내가 하는 것이다.
아내가 이사하는 것을 보면서 보조 남편은 깨닫는다. 이사는 어느 날 하루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라 일정한 기간 동안 연속해 일어나는 사태라는 것을. 그러므로 누가 “언제 이사했어요?”라고 묻는다면 남편은 어떻게 답을 해야 좋을지 몰라 잠시 난감할 것이다.

남편은 모른다

사실 남편은 이사 기간 내내 난감하다. 집이란 모르는 구석이 많은 곳이다. 그 좁은 공간에서 끝없이 물건들이 나오니까. 그렇게 많이 분류하고 버렸는데도 또 어디선가 버릴 게 나온다. 가지고 갈 수 없는, 그래서 주거나 버려야 하는 물건들이 날마다 나온다. 그러니 버려야 할 때마다 쩔쩔매는 남편은 난감하다.

이사 하루 전날, 남편은 감상에 젖는다. 5년 동안 가족이 살았던 공간이다. 아내와 다투고 사랑했던 공간이다. 그러나 남편은 감상에 제대로 젖을 수 없다. 거실에서 짐을 분류하고 꾸리는 아내가 찾기 때문이다.

“당신 월급봉투 이거 따로 정리해요.”
“그냥 거기 둬. 어차피 같이 포장할 텐데. 우리 포장 이사 아냐?”

어차피 포장할 물건을 따로 꾸리는 일은 불필요한 일이다. 속옷이라서 따로, 편지라서 따로, 사진이라서 따로, 선물받은 것이라서 따로. 이럴 바에야 포장 이사는 왜 하는가?

“우리 짐이잖아. 포장하는 사람들 짐이 아니고.”
“무슨 이사가 왜 이렇게 복잡하고 힘들어.”
“원래 이사가 복잡하고 힘든 거네요. 당신이야 매번 이사 때마다 회사 나가고 없었으니까 몰랐겠지만.”

이사는 정말 복잡하고 힘들다. 이사 당일도 바쁘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부동산에 갔다 와야 하고, 가스와 인터넷과 에어컨 업체에도 연락을 해야 한다. 또 포장하면서, 포장을 풀면서 끝없이 질문하는 이삿짐센터 사람들에게도 대답해야 한다. 베란다와 창에 있는 차양과 커튼은 가져가는 것인지, 가져온 물건들은 어느 방, 어느 자리로 가야 하는지, 액자는 어디에 달 것이지. 역시 짐은 포장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짐을 쓰면서 살아갈 우리 짐이다. 그 수많은 짐의 주인인 아내는 주인답게 판단하고 결정하고 대답한다.

짐은 다 옮겨진다. 이삿짐을 옮기던 사람들도 모두 돌아간다. 도무지 낯설기만 한 공간에 낯익은 남편과 아내만 남는다. 드디어 이사가 끝난 것이다. 정말 끝났을까? 아내가 팔을 걷어붙인다.
“자, 본격적으로 짐 정리해야지.”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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