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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가구 위험…둑을 폭파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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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태풍 '메기'의 북상으로 장대비가 쏟아지던 18일 오후 10시. 전남 담양군 소재 육군 특전사 황금박쥐부대 상황실에 긴박한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저수지 둑을 폭파해 주세요."

광주시 북구 운정동 운정저수지의 여수로(일정량 이상 물이 고일 경우 물을 다른 곳으로 빼내기 위해 설치한 수로)를 폭파, 물을 빼달라는 농업기반공사 측의 요청이었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4시간 동안 시간당 50㎜의 폭우가 쏟아져 불어난 물로 둑 중앙부위가 밀려나고 상단 2~3m는 이미 부분적으로 무너지고 있었다. 둑이 붕괴될 위험에 처한 것이다. 당장 여수로를 폭파해 수압을 낮출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민간장비로는 속수무책이었다.

길이 74m, 둑 높이 7m, 만수면적 3000평에 총 저수량 2만t 규모의 저수지 아래쪽엔 어운.주룡마을 등 3개 마을 200여가구 600여 주민이 살고 있다.

불안감에 싸여 있던 주민들이 고지대로 대피한 직후인 오후 10시40분쯤 '폭파'주특기를 가진 특전사 장병 8명이 현장에 출동했다. 이들이 도착했을 때는 제방 끝에 물이 찰랑찰랑 넘기 직전이었고 일부 연약한 곳은 붕괴되고 있었다.

심야에 세찬 비로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악천후에서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폭약을 설치하는 작업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 폭약량이나 폭파방법이 잘못될 경우 제방 전체가 폭파돼 저수지가 터져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폭약설치를 끝낸 특전사 장병들은 자정부터 40분 간격으로 세차례에 걸쳐 여수로를 폭파했다. 물이 순식간에 빠지면서 운정 저수지의 위기는 고비를 넘기는 순간이었다. 작업을 지켜보던 주민 등 100여명은 일제히 함성과 함께 박수를 치며 이들의 '작전 성공'을 축하했다.

팀장 이창규 소령은 "실전 같은 주특기 훈련을 해와 이번 폭파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며 "주민들이 안심하는 모습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광주=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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