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의식 1100명 승객 살렸다-호주 유람선 화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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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천1백여명이 탑승한 호화 유람선이 망망대해에서 화재로 침몰했으나 선원들의 침착한 대응과 승객들의 질서의식, 당국의 신속한 구조활동으로 전원 생환했다.

태국을 출발, 6일간 말라카 해협과 푸켓 등지를 돌고 싱가포르로 향하던 호화유람선 선 비스타호가 갑자기 불길에 휩싸인 것은 20일 오후 6시30분쯤. 승객 대부분이 갑판에서 차를 마시거나 해지는 수평선을 감상하며 여유있게 오후을 보내던 중 갑자기 선체 뒤편 엔진쪽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갑판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영국인 토머스 보나르드 (62) 는 "내 삶이 바다 한가운데서 이렇게 끝나는구나" 하고 절망했다고 절박했던 순간을 증언했다.

일부 승객은 귀중품을 챙기기 위해 객실로 뛰어들어가고 여자 승객들은 겁에 질려 울부짖었다.

이때 선장의 안내방송이 나왔다.

선장은 차분한 목소리로 "엔진 이상으로 화재가 발생했다.

승객들은 구명정에 옮겨 타라. 구명정은 충분하다" 고 지시했다.

승객들은 너무도 의연한 선장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지시대로 따르기 시작했다.

갑판은 질서를 되찾았다.

승객들은 길다랗게 줄을 섰다.

그리곤 차례대로 구명정에 옮겨 탔다.

일부 승객은 마치 영화 '타이타닉' 의 한 장면처럼 조용히 찬송가를 부르기도 했다.

수십여대의 구명정에 승객들이 모두 옮겨 타는 데 3시간여가 걸렸다.

바로 직후 선 비스타호는 드넓은 바닷속으로 조용히 가라앉았다.

모두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고를 접수한 말레이시아 클랑 항구측의 대응도 신속했다.

안전책임자는 사고소식 접수후 즉각 구원정을 파견했고, 해양경찰과 해군도 출동했다.

21일 오전 1시22분. 칠흑 같은 밤바다에서 6시간 동안 공포에 떨었던 승객들은 모두 안전하게 구출됐다.

호주 선적 선 비스타호는 길이 2백13m에 5백47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으며 최대 탑승인원 1천6백명인 3만40t급의 대형 유람선. 사고 당시 한국인 관광객 4명을 비롯해 13개국에서 온 관광객 4백72명 등 1천1백4명이 탑승하고 있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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