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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라운지] 주한 외교관의 업무 인수·인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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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지난 14일 영국 대사관저에서 열린 송별파티에서 워익 모리스 영국 대사(맨 오른쪽)가 건배를 제의하고 있다. 국내외 외교관.학자.언론인 등 60여명이 참석한 이날 파티는 이임하는 안토니 스톡스 참사(왼쪽 셋째)를 위해 열렸다. 남정호 기자

무더위가 한창이던 지난 14일 밤 서울 덕수궁 옆 영국대사관은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114년 된 고풍스러운 대사관저에서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관저 입구에선 워익 모리스 대사와 남녀 외교관 두명이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이달 말 한국을 떠나는 안토니 스톡스 참사와 후임자인 주디스 거퍼(여) 신임 참사다. 스톡스는 손님들과 일일이 악수한 뒤 "후임자인 멋진 숙녀를 소개하겠다"며 거퍼를 소개했다. 이날 모임의 공식 명칭은 '스톡스 참사 송별회'. 지인들이 모여 작별인사를 나누라고 모리스 대사가 열어준 파티였다. 그러나 이날 파티의 실제 목적은 후임자에게 주요 인사들을 소개해주는 '사람 넘겨주기'에 있었다.

이 자리에는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을 비롯해 국내외 외교관.학자.언론인 등 60여명이 참석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자 모리스 대사는 "잠깐 여기를 주목해 달라"며 장내를 정돈한 뒤 스톡스 참사를 위한 건배를 제의했다. 그러곤 그는 곧바로 거퍼 참사를 "최고의 다국적 회계법인회사에서 일하다 외무부에 합류한 재원"이라며 "언젠가 여성대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치켜세웠다. 대사가 나서서 신임 참사를 한국 외교가에 데뷔시킨 것이다. 한 영국대사관 직원은 "이번 리셉션이 참사 인수인계의 하이라이트"라며 "외교관의 가장 큰 자원이라고 할 수 있는 과거의 중요 인맥을 넘겨받고 앞으로의 새로운 인맥을 구축해 나갈 발판인 셈"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서울로 부임하는 외교관들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빈틈없는 인수인계 절차를 밟는다. 영국의 경우 "2주간의 공식적인 인수인계 프로그램이 짜여 있다"고 스톡스 참사는 설명한다. 이 기간 중 전임자는 후임자에게 담당업무를 상세히 알려주는 것은 물론 여러 군데를 같이 다니기도 했다. 스톡스 참사는 "외교부 등 관련 부처 외에 판문점 등에도 함께 가 한국 상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했다.

또 "외교.안보 등 주요 분야 전문가들을 불러 점심.저녁 식사를 함께한 것도 10여 차례가 넘는다"고 밝혔다. 이 모든 것이 영국 외무부 규정에 따른 의무사항이라고 한다.

◇ 부부동반 모임서도 정보교환=다른 나라 외교관들의 인수인계 과정도 철저하다. 지난 7월 말 부임한 제프 투스 호주 공사는 18일 " 호주 고위직 외교관의 경우는 본국에서 업무를 인수인계받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호주 캔버라에서 진 던(여) 전임공사로부터 업무에 관한 소상한 설명과 함께 300여장이 빼곡히 꽂힌 명함집을 넘겨받았다고 한다. 명함집은 관료.기업인.언론인 등이 분야별로 나뉘어 있었다고 한다. 또 이와 별도로 '꼭 만나야 할 사람' '우선적으로 만나야 할 사람' 식으로 분류된 리스트도 받았다. 투스 공사는 "그 덕분에 부임 후 누구와 접촉할지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료를 주고받은 것 외에 전.현직 공사는 부부동반으로도 만나 정보를 교환했다. 투스 공사는 "대사관에서 호주인들과 일하게 될 나보다 집에 남아 한국적 상황과 맞닥뜨려야 할 아내에게 현지 정보가 더 절실할 거라고 생각했다"며 부부동반 모임을 갖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여기서 투스 공사 부부는 설악산 등 꼭 가봐야 할 관광명소, 싱싱한 과일가게의 위치 등 피부에 와닿는 정보까지 얻게 됐다. 그는 "그중에서도 쓰레기 분리수거와 쓰레기 봉투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유용했다"고 말했다.

신임 외교관을 위한 공식적인 준비도 철두철미하다. 호주 외무부에선 부임 전 해당지역에 대한 사전교육을 3주간 실시한다. "간단한 한국어 교육 외에 한국의 정치.경제.사회 등 각 분야에 대해 브리핑을 받았다"고 투스 공사는 말했다. 또 교육 도중 호주에서 활동 중인 한국 기업인 또는 한국을 잘 아는 각 분야의 호주인들과의 만남도 이뤄졌다. "한국과 호주 간의 현안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는 게 투스 공사의 설명이다.

일본.중국 등 다른 공관에서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인수인계가 이뤄진다. 두 대사관 측은 "2~3주에 걸쳐 업무 인수인계가 이뤄진다"고 밝혔다.

남정호.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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