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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style, My life] ‘드레스 셔츠’ 전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8면

이스라엘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엘리 타하리는 언제나 비슷한 차림새를 고수한다. 사업 파트너인 그를 만날 때 마다 그랬다. 처음 만났던 2007년 9월. 그는 타이를 안 맨 옅은 푸른색 셔츠에 진청색의 청바지, 비슷한 색 리넨 재킷을 입은 아주 캐주얼한 모습이었다. 이후로도 그는 처음 만났던 그날과 거의 같은 스타일만을 보여주고 있다. 명색이 디자이너란 사람이 정작 본인의 스타일링에는 너무 무심해 보이니 한편으론 심한 ‘짠돌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궁금함에 못이겨 올 2월 뉴욕 컬렉션에서 이유를 물었다.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만날 때마다 같은 스타일이네요.” 타하리는 빙그레 웃더니 “옷은 입는 사람 그 자체보다 드러나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게 내 신념이고 이건 나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디자인 철학”이라고 대답했다. “스스로 편안하고 남들도 그렇게 인정하는 모습으로 나를 인식시켰으면 좋겠다”는 말도 곁들였다.

사업상 ‘나’라는 사람을 상대방에게 긍정적으로, 그리고 빠르게 각인시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매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만들 수도 없는 일이니 ‘나만의 스타일’로 이미지를 심어주는 일이야말로 가장 쉬운 전략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난 한국에서는 대기업 임원인 동시에 해외 파트너들을 만날 때는 그들의 브랜드와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비즈니스맨이면서 또 패션 피플 중 한 사람이다. 이때마다 ‘드레스 셔츠’라는 아이템으로 ‘나의 스타일’을 보여준다는 게 내 전략이다. 그룹의 회의나 상사를 만날 때에는 화이트 또는 블루 계열의 셔츠로, 외국 파트너들과 만나는 디너 파티에서는 솔리드 셔츠보다는 해당 브랜드의 핑크나 퍼플 줄무늬 셔츠로 나를 연출한다.

‘패션을 안다’는 것과 ‘스타일이 있다’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남과 다른 나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것을 특화하기 위해 꾸준히 입어주면 되는 게 아닐까. 고로 앞으로 비슷한 컨셉트의 자리에서 매번 비슷한 드레스 셔츠를 입고 있는 나를 보더라도 오해하지 말아주시길. “이 셔츠, 지난 번 거랑 다르거든요!”

조준행 SK네트웍스 패션사업본부장(상무)으로 엘리 타하리, 도나 카란 등의 브랜드 운영을 총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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