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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지식인 18인 집필 '국가주의를 넘어서' 출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은 살아있다. ' 이는 단행본 '국가주의를 넘어서' (이규수 옮김.삼인.1만2천원) 의 필자로 나선 재일 (在日) 한국인 학자 4인을 포함, 일본 학자 18인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들의 공격 대상은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96년 11월 활동시작) 과 '자유주의사관 (史觀) 연구회' (97년 7월 결성) 다.

사람으로 치면 '역사교과서' 의 사회운동가 니시오 간지 (西尾幹二) , '자유사관' 의 역사학자 후지오카 노부가츠 (藤岡信勝) .여기다가 선동가이면서 만화가인 고바야시 요시노리 (小林よしのり) 를 포함시킬 만하다.

우선의 이 세사람의 성격규정을 위해선 고바야시가 만화 '대동아전쟁' 을 통해 던진 메시지를 옮길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대동아전쟁은 인류가 만들어낸 잔혹했지만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싸움이었다. " "여러분은 전쟁에 나가겠느냐, 아니면 일본인임을 포기하겠느냐. " 섬뜩한 얘기지만 이는 지난 2월 김용범 (국민대 강사) 씨가 '일본주의자의 꿈' (푸른역사 펴냄)에서 밝힌 내용과 대동소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책이 다시 우리를 흔들며 다가서는 것일까. 어쩌면 일본 지식인들의 양심발언이 한국사회 지식인들의 일본에 대한 무관심, 경우에 따라서는 막연한 신뢰가 얼마나 위험한지를 일깨우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물론 국가주의자들의 고의적인 트릭 (속임수) 을 무시할 수 없다.

그들이 자신들의 역사노선을 '국가 정사 (正史) 의 부활' '수정주의 역사관' '새로움' '자유주의' 등으로 묘사하고 있는 게 바로 그것이다.

누구도 그 화려한 표현의 이면에 자리한 폭력성을 쉽게 간파하긴 어려웠을 법하다.

하지만 이 책의 편집을 주도했던 다카하시 데츠야 (高橋哲哉.43.도쿄대 교수.철학) 의 분석 앞에서 그 실체는 드러나고 만다.

다카하시에 의하면 일본 국가주의 발현의 신호탄은 95년1월 '마르코폴로' 지가 특집으로 다룬 '전후 세계사의 최대금기 - 나치 가스실은 없었다' 였다.

이 '홀로코스트 (나치 대학살) 부정론' 은 잡지 폐간사태로까지 이어졌지만 전체 흐름에서 보면 그것은 또 다른 반격일 뿐이었다.

이듬해부터 후지오카는 기존의 역사서술 방식을 '자학 (自虐) 사관' , 즉 자국.자민족을 경멸하고 업신 여기는 도착적인 사관으로 몰아붙이면서 그 극복의 방편으로 '자유주의 사관' 이란 이름의 국가주의를 들고 나온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그 원류는 작가 시바 료타로 (司馬遼太郎.96년 작고)가 68년 4월부터 72년 8월까지 인기리에 연재한 소설 '언덕 위의 구름' (대동아전쟁 긍정론을 담은 역사소설) 이었다.

그의 작품이 일본열도를 열광시킨 것은 국가와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하는 통로로 삼기 적합했기 때문. 이런 맥락에서 일본 국가주의 역사관을 대표하는 '시바 - 후지오카 사관' 이 탄생했다.

고모리 요이치 (小森陽一.46.도쿄대 교수.일본근대문학) 는 이를 "저급한 역사상식의 수준에서 자의적으로 해석한 결과일 뿐" 이라는 말로 의미를 격하시키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다른 대부분의 집필자도 "자학사관이 국익과 개인이익을 동일시하면서 국가간의 모순을 묵살하고 변명을 늘어놓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며 비판을 가하고 있긴 마찬가지다.

특히 주목할 사실은 다카하시와 '패전후론' (敗戰後論 : 국내에선 지난해말 창작과비평사에서 '사죄와 망언 사이에서' 로 번역출간됨) 의 저자 가토 노리히로 (加藤典洋) 의 '역사주체 논쟁' 이다.

가토가 "더럽혀진 아버지라도 아버지는 아버지다.

3백만 일본인 사망자를 2천만 아시아인 희생자보다 먼저 애도해야 한다" 는 주장을 내세운데 대해 다카하시는 "그의 '이상한 아버지론' 은 침략에 대한 판단을 흐리게 하려는 술책에 불과하며 새로운 '사죄방법론' 에는 전쟁기억을 국가주의로 몰아가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고 허구성을 비난하고 있다.

이 책에 동참한 재일 한국인 교수 서경식.이연숙.이효덕.강상중 네사람. 이들이 종군 위안부 문제와 국가주의 사관의 무모함을 들춰내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특히 사토 마나부 (佐藤學.48.도쿄대 교수.교육학) 의 "얼핏 거창하고 까다롭게 여겨지는 역사 이야기도 결국엔 개인의 신체기억 (고통을 당했던 체험) 으로부터 시작된다" 는 지적 앞에선 국가주의로 재무장한 일본인들이 거의 말문을 닫아야 할지 모를 일이다.

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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