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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국수를 찾아서 ⑪ 제주도 고기국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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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자연사박물관 근처에 가면 제주도 토속음식인 고기국수를 파는 식당이 10여 곳 몰려 있는 국수거리가 있다. 뭍 사람들이 말하는 돼지국수로, 제주도에서는 고기라고 하면 쇠고기가 아닌 돼지고기를 의미한단다.

국수와 돼지고기.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그래도 요즘 일본의 돈코쓰 라멘이나 부산의 돼지국밥 등이 알려지면서 그리 생소하게 들리진 않는다.

제주도 사람들은 왜 돼지고기 국물에 국수를 말아 먹었을까.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의외로 구전되는 얘기도 별로 없었다. 다만 사람들마다 추측할 뿐이다.

“제주도에선 원래 돼지로 하는 요리가 많았어. 큰일이 있을 때 돼지를 잡아서 큰 솥에 넣고 끓였는데 고기를 건져먹고 나면 국물만 남았지. 거기에 몸(해조류인 모자반의 제주도 방언)을 넣어서 몸국을 끓여 먹었지. 그러다 한국전쟁 후 구호 밀가루가 들어오면서 국수를 넣지 않았을까 생각해.”

제주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서 20여 년째 ‘조명식당’이라는 고기 국숫집을 하고 있는 제주도 토박이 조영자(69) 할머니는 이렇게 설명했다. 국수 골목에서 3대째 고기국수를 팔고 있는 ‘3대 국수회관’ 김경자(40) 사장은 다른 이야기를 했다. 그는 제주도의 ‘조베기’라는 음식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했다. 이 음식은 돼지국물에 메밀이나 밀가루 반죽을 손으로 뚝뚝 뜯어 넣은 수제비다. 수제비 대신 중면을 넣은 게 고기국수가 된 것 같다는 것이다.

제주도 향토음식을 연구하고 있는 오영주(51) 제주 한라대 호텔 조리과 교수는 ‘칼국’(칼싹두기)이 원조일 것이라고 했다. 칼국은 메밀가루 반죽을 밀어 칼로 썰어 돼지국물에 말아 먹던 음식으로 보통 칼국수와 수제비의 중간쯤 되는 형태였다. 국처럼 숟가락으로 떠먹던 음식이었는데 1970년대 초 건면이 대중화되면서 메밀반죽 대신 국수를 넣은 것이 널리 퍼지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어떤 경로로 시작됐든 고기국수는 제주도의 일반화된 음식 중 하나가 됐다. 그런데 그 쓰임은 뭍과 조금 다르다. 뭍에서 국수는 잔치음식이지만 이곳에서는 주로 상을 당했을 때 고기국수를 낸다. 물론 과거엔 결혼잔치에서도 냈지만 요즘은 거의 내는 경우가 없다. 또 제주도 주당들은 해장으로 고기국수를 먹는다. 이 때문에 국수골목은 자정을 넘기면서 더 복잡해진다. 주당들의 마지막 코스가 고기국수 한 그릇에 소주 한 잔이라는 게 이곳의 정석이다.

“돼지뼈를 우려낸 뜨거운 국물은 속풀이에 좋고, 고명으로 올라오는 오겹살은 안주로 좋고, 국수는 출출한 배를 채울 수 있어 좋다”는 게 김경자 사장의 설명이다. 국숫집 영업시간이 새벽 6시까지인 이유가 바로 이런 주당들을 위해서란다.

모든 국수가 그렇듯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고 쉽다. 단지 돼지 특유의 냄새를 잡는 것이 포인트다. 돼지뼈를 큰 솥에 넣고 24시간 동안 끓이고 오겹살을 삶아서 편육처럼 썰어 놓는다. 주문이 들어오면 얼른 중면을 삶아 뜨거운 국물에 담고 오겹살을 가지런하게 올리면 끝이다. 돼지 냄새는 생강과 고춧가루 등으로 만든 양념장을 넣으면 감쪽같이 없어진다. 먹어도 담백한 맛이 나는 이유다. 김경자 사장은 “원래는 돼지 앞다리인 전지를 주로 사용했는데 손님들의 입맛이 고급화되면서 오겹살을 올리게 됐다”고 한다.

사실 20년 전까지만 해도 고기국수는 제주도에서는 사라져 가던 음식이었다. 도내에서도 고기국수를 내는 곳은 10여 군데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10여 년 전쯤부터 인터넷을 통해 뭍사람들에게 소문이 나기 시작해 제주도 곳곳에 고기 국숫집이 생겨났다. 김경자 사장은 “관광 성수기에는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대부분 육지 사람”이라며 “인터넷 덕분에 사라져 가던 향토음식이 다시 빛을 본 경우가 바로 고기국수”라고 말했다.

제주=이석희 기자

협찬: (주)면사랑
다음 회(10월 8일)는 ‘춘천 막국수’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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