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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실패 땐 제 아파트라도 팔겠습니다”

중앙일보

입력

김미경 원장의 원포인트 레슨

- 말에 강약 없는 스피치는 5분 만에 청중을 졸게 합니다. 중요한 대목일수록 오히려 뜸을 들이고 작게 말해보세요.
- 스피치에서도 벤치마킹은 중요합니다. 강연을 들을 때 나라면 어떻게 말할지 생각해보세요.
- 똑같은 말은 그만. 단어선택부터 차별화해 보세요.

이코노미스트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애경의 신입사원 최종 면접장. 한 지원생이 흥분된 표정으로 들어왔다. 그는 군대시절 사고를 당해 한쪽 손이 없었다.

조서환 KT 전무의 생존 스피치

면접 중간에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동 탈락됐다. 억울함을 못 이긴 그는 면접장으로 되돌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목소리는 높이지 않았다.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며 논리적으로 따지고 들었다.

“저는 깡패 노릇을 하거나 교통사고로 오른손을 다친 것이 아닙니다. 내 민족 내 겨레를 위해 자의든 타의든 군에 갔고, 또 희생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회사 모집공고에는 분명히 국가유공자 우대라고 쓰여 있습니다. 여러분이 써놓고 지키셨습니까?”

이 지원생의 남다른 배짱을 눈여겨본 장영신 애경 회장은 그를 뽑지 않을 수 없었다. KT 조서환 전무의 프레젠테이션 인생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는 고비마다 생존을 건 스피치로 위기를 기회로 바꿨다.

조서환 전무는 마케팅계에서 신화적인 인물로 통한다. 애경에서 하나로 샴푸, 2080치약, 마리끌레르 화장품 등을 히트시켰다. KT로 옮긴 뒤에는 나(Na), 드라마, 쇼 등의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러나 마케팅은 번뜩이는 재치나 아이디어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기획안이 있어도 결재권을 가진 상사를 설득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애경의 하나로 샴푸를 기획할 때만 해도 주변 사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경쟁업체 두 군데에서 이미 선점했기 때문에 시장성이 없다는 얘기였다. 장영신 회장은 11번 퇴짜를 놨다. 그러나 조 전무는 포기하지 않았다.

“회장님께 ‘하나로 샴푸가 망하면 분양 받은 목동 아파트라도 팔겠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저는 확신이 있었으니까요. 제가 만약 남들이 말하듯 열심히 하겠다고 했으면 회장님께서 마음을 바꾸시진 않았을 겁니다.”

회장에게 12번 보고한 끝에 승낙

그는 결국 12번째 도전에서 승낙을 받아내고야 만다. 실제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하나로 샴푸는 먼저 나온 두 제품을 앞질러 6개월 만에 시장을 석권했다. 그는 애경에서 최초로 과장에서 차장을 건너뛰고 부장으로 승진했다. 조 전무는 프레젠테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감이라고 말한다.

상사 앞에서 주눅 들고 눈을 못 맞추고 불안해하면 어느 누구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로 중요한 것은 차별화다. 그는 KTF로 이직할 때 쟁쟁한 대기업 출신 3명과 함께 최종 인터뷰에 올라갔다. 다른 후보들은 CEO 앞에서 “열심히 하겠다” “최선을 다하겠다” “분골쇄신하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러나 그는 반대로 CEO를 인터뷰했다.

“사장님이 보시기에 KTF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통화품질이 안 좋은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오히려 통화품질을 광고해야 합니다. 일부 안 터지는 지하는 포기하되 20∼30% 싼 통화료를 강점으로 내세워 통화품질도 1등에다 고객에게 통화료 혜택까지 주는 기업 이미지를 구축해야 합니다.”

자신있게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해 자신을 차별화했던 그는 결국 마지막 면접을 통과했다. ‘마케팅의 시작은 곧 차별화’라는 조서환 전무는 외양에서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것도 차별화라고 강조한다. 강연이나 프레젠테이션이 있으면 청중이 그를 어떻게 볼지 먼저 모습을 머릿속에 그린다.

직원들을 대상으로 사내강의를 할 때는 어떤 옷을 입을지, 대학생들 앞에서는 어떤 차림이 어울릴지 미리 머릿속으로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심지어 볼펜이나 벨트도 꼼꼼히 챙긴다. 몽블랑을 예로 들어 얘기할 것 같으면 강연 중에 꺼내서 설명할 수 있도록 일부러 몽블랑 볼펜을 챙기는 식이다.

그는 수십 년간 각종 프레젠테이션과 강연으로 다져진 프로 스피커지만 말에 대한 노력은 지금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는 스피치를 할 때 항상 3P를 생각한다. 계획(Planning), 준비(Preparation), 연습(Practice)이 바로 그것. 청중이 강연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파악한 뒤 계획하고 준비한다.

여기서 몇 분 숨 고르고, 여기서 동영상을 보여주고, 여기서 이벤트를 하고 등 종합적인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고 연습하는 것이다. 그는 스피치에서 연습만큼 훌륭한 스승은 없다고 강조한다.

“청중의 언어로, 듣는 사람 입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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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어릴 때부터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조 전무는 아이들에게 줄반장이라도 시켜서 대중 앞에서 말하는 훈련을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도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줄반장을 시작으로 학교에서 줄곧 리더 역할을 하다 보니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데 두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다른 사람의 강연을 부지런히 벤치마킹하기로도 유명하다. 현재 그가 듣는 최고경영자과정만 무려 9개. 엄청난 시간과 돈이 드는 일이지만 얻는 것이 적지 않다.

“청중의 입장에서 다른 사람들의 강연을 보니까 배우는 게 정말 많아요. 특히 말의 높낮이 없이 말하는 사람은 정말 5분 만에 청중을 졸게 하더군요. 눈을 뜬 사람도 조는 것이나 다름없어요. 가장 중요한 게 강약조절이에요.”

그에게 가장 열광적인 환호를 보내는 이들은 CEO와 대학생이다. CEO들은 ‘나도 저랬지, 어쩌면 나와 저렇게 비슷한 고민을 했을까’ 하는 공감의 박수가 많다. 사회의 문턱 앞에서 불안한 대학생들은 그의 강연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사고로 손까지 잃었지만 긍정적인 마인드와 피나는 노력으로 인생을 바꾼 그의 이야기는 사람을 진하게 감동시킨다.

그만의 차별화된 콘텐트인 셈이다. 게다가 진실하고 편안한 그의 스피치는 비극을 희극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요즘 대기업 공채가 발표되는 등 한창 취업 시즌이다.

취업준비생들은 어떻게 자신을 어필해야 할까 고민할 것이다. 조서환 전무처럼 생존을 건 스피치를 해보면 어떨까? 면접관을 향해 5분 동안 왜 자신이 탈락해야 하느냐며 항변했던 그 패기, 11번 안 돼도 12번째 또 찾아가는 끈기가 CEO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이다.

조서환 전무의 스피치 비법

- 프레젠테이션의 핵심은 자신감이다
- 청중들도 칭찬이 필요하다. 아낌없이 칭찬하라
- 고객의 언어로 강연하고 설득하라

김미경 아트스피치원장, 정리=임성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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