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 만하니 기능인들의 땀 잊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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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국제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홍근삼씨가 서울 안국동 양복점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김경빈 기자]

1967년 7월 17일. 국내 첫 기능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홍근삼(69)씨는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금메달을 목에 건 그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홍씨는 당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의 양복 부문에 출전해 제화 부문 배진효(68)씨와 함께 금메달을 땄다. 한국이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딴 첫 금메달이라 감동이 컸다. 두 사람은 당시 자비로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홍씨는 “귀국할 때 김포공항에서 세종문화회관까지 카 퍼레이드를 했다. 길 양쪽에서 시민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환호성을 지르고 정말 대단했다”며 “우리가 금메달을 딴 이듬해부터 양복과 제화의 미국 수출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지 정확히 10년 후 우리는 처음으로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이후에도 올해까지 25차례 참가해 16번 종합우승을 차지해 세계가 인정하는 기능강국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기능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의 화려한 날은 길지 않았다. 홍씨는 “약 20년 전부터 우리 같은 기능인들은 잊혀진 존재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나서 국제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양옥집을 지어준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창업지원금을 대준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진 것은 없다는 것이다. 정부가 해 준 것이라곤 1년에 한 번 주는 기능 장려금(40여만원)이 전부였다. 이 장려금은 약 5년 전부터는 한 해 400여만원으로 인상됐다. 홍씨는 “산업화가 끝나고 이제는 다들 먹고살 만해졌는지 기능인들이 흘린 땀을 알아주질 않는다”며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스포츠스타들과 비교하면 자괴감마저 든다”고 했다.

지난해 베이징올림픽의 금메달리스트의 경우 대한체육회는 한 사람당 5000만원의 포상금을 지급했다. 또 종목별로 경기단체에서 별도로 약 1000만~1억원 정도의 포상금을 줬다. 그리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사망할 때까지 매달 100만원 이상의 연금을 받는다.

이명박 대통령이 ‘제40회 국제기능올림픽’에서 종합 우승한 선수단과 15일 청와대 영빈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조문규 기자]


기능올림픽대회 메달리스트의 대우는 훨씬 못 미친다. 산업인력공단 정성훈 기능경기팀장은 “올해 기능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겐 5000만원의 포상금을 줬다”며 “또 한 해에 400만원 정도를 기능 장려금으로 준다”고 말했다. 장려금 지급은 메달을 딴 분야의 일을 그만두거나 다른 일을 하면 중단된다. 홍씨는 지금 서울 종로에서 양복점을 운영하고 있고, 배씨는 서울 동대문의 한 수제화점에서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두 사람은 “눈도 어둡고 일손이 느려졌지만 장려금이라도 받으려면 현직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군복무가 면제되지만 기능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산업기능요원으로 3년간 대체 복무할 수 있을 뿐이다.

홍씨는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 어디에서도 기능인을 천대한다는 소릴 듣지 못했다”며 “후배들에게도 열심히 해서 기능올림픽 나가 금메달을 따라고 말하기가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아들도 내 대를 잇겠다고 했지만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도 사회적 홀대가 두려워 뜯어말렸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 선수단 치하=올해 캐나다 캘거리 기능올림픽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한 선수단은 2003년 이후 6년 만에 청와대를 방문해 오찬행사를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통산 16번째 우승을 한 사실을 언급하며 “우리 국민의 우수성과 인재대국, 기능강국의 위상을 세계에 떨친 쾌거”라고 치하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우리나라가 산업화에 성공한 것은 여러분 같은 우수한 기능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 속에 우리가 가장 빨리 회복되고 있는 것도 제조업의 근간인 기능인력이 우수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국가대표 선수 45명을 비롯해 선수 부모, 심사·훈련지도위원, 기능올림픽 출신 경영진과 근로자 등 160여 명이 참석했다.

이에 앞서 이 대통령은 7일 종합우승 소식을 전해 듣고 선수단에 축전을 보내 “이번 종합우승은 열정과 노력이 일궈낸 값진 성과”라고 격려했다.

장정훈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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