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정운찬, 이명박과 다른 중도 묶어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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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나는 정운찬 총리 후보에 대한 글을 두 번 쓴 적이 있다. 한번은 지난 2001년 모 월간지에 한국 중도주의를 대표하는 지식인 중 한 사람으로, 다른 한번은 지난해 『월간중앙』에서 백낙청·최장집·박세일 교수 등과 함께 해방 이후 우리 사회 담론을 대표하는 지식인 20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다룬 바 있다.

먼저 밝히고 싶은 것은 나는 개인적으로 정운찬 후보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전공도 다르고 출신 학교도 다르다. 내가 정운찬을 주목했던 것은 지식사회학적 시각에서 그의 저작과 담론이 우리 학계에 미친 영향 때문이었으며, 또 그가 우리 사회에선 드문 케인스주의 경제학자라는 사실에 있었다.

정운찬 스스로 ‘미시적 케인스주의자’ 또는 ‘개혁적 케인스주의자’라 불렀듯이 케인스가 정운찬 경제학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다. 케인스주의는 완전고용과 복지정책을 통해 자본과 노동의 이익을 조정하려는 프로그램이다. 전후 황금시대를 가져온 케인스주의는 1970년대 중반 이후 복지국가의 위기와 함께 현실 정책 영역에서 잠시 후퇴하기도 했지만, 90년대 중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재집권에서 볼 수 있듯이 여전히 영향력이 큰 이론이다.

정운찬의 미시적 케인스주의는 물론 서구 사회의 케인스주의와는 적잖이 다르다. 서구에서 케인스주의는 시장이 잘 발달한 나라에서 시장이 실패하거나 경제가 부진할 때 정부가 나서서 수요 확대를 통해 경기를 활성화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반면 미시적 케인스주의는 우리나라처럼 시장이 원활하지 못할 경우 정부가 주도적으로 시장을 형성해 경제 활력을 높이려는 프로그램을 지칭한다.

이런 미시적 케인스주의의 시각에서 정운찬은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지속적으로 평가해 왔다. 그리고 그 평가는 언제나 양면적이었다. 먼저 김대중 정부에 대해 정운찬은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해 노력해 온 것은 긍정적으로 봤지만, 금융을 포함한 일부 정책 실패에 아쉬움을 표시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실패의 원인으로 그가 관료와 재벌을 꼽았다는 점이다. 집권 초반 개혁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음에도 불구하고 관료와 재벌이 이를 거부함으로써 제대로 개혁을 진행하지 못했다고 그는 지적한 바 있다.

2002년 서울대 총장을 맡은 후 글쓰기를 자제해 온 정운찬은 노무현 정부에서 최대 논란을 이뤘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표명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총론에선 찬성했지만, 각론에선 유보하는 입장을 취했다. 세계화 시대에 경제 개방의 확대는 불가피하더라도 개방의 폭과 시점은 세계경제 흐름과 국내경제 역량을 고려해 가면서 조절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내가 강조하려는 바는 두 가지다. 첫째, 적어도 내 시선에는 정운찬의 중도주의와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 사이에는 교집합보다 여집합이 더 커 보인다.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이 ‘친(親)서민’을 표방하더라도 감세, 탈규제, 민영화, 노동 유연화, 무엇보다 정부 역할의 축소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중도실용이라는 점에서 정운찬의 미시적 케인스주의에 기반한 중도주의와는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가 존재한다.

둘째, 국무총리란 기본적으로 행정가이자 정치가이다. 서울대 총장을 포함한 행정 경험은 어느 정도 풍부하지만, 정치는 그에게 여전히 낯선 영역이다. 사회갈등을 해소하고 국민통합을 이뤄내야 할 정치 영역에서 그가 얼마나 역량을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그가 표방해 온 미시적 케인스주의의 관점에서 당장 용산 사태, 비정규직 문제, 심화되는 사회 양극화 등에 어떤 해법을 제시할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중도 보수적 중도실용과 중도 진보적 미시적 케인스주의를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해야 할 과제를 정운찬은 안고 있다. ‘두 개의 중도’를 ‘하나의 중도’로, ‘두 국민’(two nations)을 ‘한 국민’(one nation)으로 새롭게 통합해 내는 것에 정운찬의 미래는 물론 이명박 정부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난해 정운찬의 담론을 다룰 때 나는 그의 유별난 야구 사랑에 대해 말한 바 있다. 그는 야구 해설을 한 적이 있을 정도로 열렬한 야구팬이다. 열성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한번 꿈꿔 보는 직업이 야구 감독이다. 야구 감독은 그라운드의 조율사다. 게임 전체의 완급을 조절하고, 선수들의 역량을 극대화해야 한다. 청문회의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정운찬 후보가 새로운 조율사로서의 역량을 발휘해 주길 바란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