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與 지구당 폐지 검토 왜 나왔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청와대와 국민회의가 8일 입을 맞춘듯 '중앙당 축소 - 지구당 폐지론' 을 제기했다. 그대로만 시행된다면 고비용 정치풍토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내용이다.

여야 정치인들은 "지구당 조직과 지역구 활동에 엄청난 비용이 든다" 고 하소연해 왔다.

"거지처럼 운영해도 최소한 한달에 5백만원은 든다" 는 것. 자민련 한 의원의 보좌관은 "지구당 운영비.경조사비.지역 활동비는 아무리 낮게 잡아도 한달에 평균 1천5백만원은 들어간다" 고 했다.

한해 한두번씩 하는 2백~3백명에 이르는 읍.면.동책임자의 연수교육 비용을 조달하는 것도 의원들의 골머리를 썩게 한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각각 2백개 가까운 지구당에 매달 지구당 운영보조비로 1백만원씩을 지급하고 있으나, 한나라당은 야당이 된 뒤 보조를 끊었다.

지구당 위원장이 자기 지구당에 쓰는 월 평균비용을 어림잡아 1천만원이라고 할 때 전국 2백53개 지구당을 일괄 폐지한다면 3개 정당에서 연 9백억원 가량의 경상비용 절감효과를 보게 된다. 지구당조직이 없어지면 선거비용도 훨씬 절감될 것이다.

중앙당 감축문제도 마찬가지. 현재 국민회의는 2백50여명, 자민련은 1백30여명, 한나라당은 5백여명의 사무처 직원이 상근한다. IMF상황을 맞았고, 각 부분에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지만 여의도의 정당 사무실엔 구조조정의 태풍이 비켜갔다.

다만 한나라당은 3분의 1씩 돌아가며 4개월 무급휴가제를 실시하고 있다. 3당 모두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일전을 준비하고 있어 사실상 중앙당 축소는 어려울 것 같다.

여권 핵심들이 마치 말을 맞춘듯 지구당 폐지론을 들고 나온데는 사실 2여의 협상대표들이 합의한 소선거구제 단일안을 중.대선거구제로 변경하려는 명분쌓기의 측면이 들어있는 듯하다. 중.대선거구에선 지금같은 형태의 지구당이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고비용 정치를 개혁한다는 명분으로 자연스레 소선거구제를 폐지하고 정치적 실리를 챙길 수 있는 중.대선거구제를 정착시키겠다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자민련 고위 당직자는 "겉으로는 여론의 비판을 수용하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여권 수뇌부가 선호하는 중.대선거구제를 관철시키기 위한 외곽때리기가 아니냐" 고 분석했다.

국민회의의 김영배 (金令培) 총재권한대행이 "자민련 박태준 (朴泰俊) 총재와 어제 만나 중.대선거구제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교환을 했다" 고 한데다 "확인할 순 없지만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국무총리도 중.대선거구제안이 올라오면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고 전망했을 정도다.

또 다른 고위 당직자는 "한 선거구에서 2인을 뽑는 중선거구제는 제1당과 2당이 의석을 나눠먹는 효과가 있어 여권으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도" 라고 말했다. 그는 대신 3~5인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가 수용될 것이라고 했다.

여권 수뇌부가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하는 것은 영남권에서 공동여당의 상당수 당선을 담보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도권에서 2여가 연합공천을 하게 되면 이 지역에서 상당한 수준으로 여권독식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른 정치적 동기도 있어 보인다. 즉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비영남권, 중진들의 다수가 중선거구제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점이다.

'미끼' 를 던져 야당이 협상에 응하지 않을 수 없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겠다는 속셈이다.

이밖에 金대통령이 지구당 폐지론 등 여론 호응도가 높은 정치개혁 정국을 주도해 李총재의 '제2 민주화투쟁' 정국을 상쇄하겠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전영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