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묵은 '수사권독립' 갈등…검.경 '힘겨루기' 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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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찰의 수사독립권 주장에 대응을 자제해온 검찰이 9일 '불가 (不可)' 입장을 공식화하며 결국 칼을 뺐다.

"이번 싸움이 검경간 '밥그릇 싸움' 으로 비치는 것이 싫어 말을 아꼈으나 경찰이 계속 언론플레이를 벌여 이젠 할말을 해야겠다" 는 게 검찰측 설명이다.

검찰은 일단 자신들의 주장이 경찰을 무시하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대신 검찰은 논리적.법률적으로 수사권 이양이 불가하다는 주장을 폈다.

검찰이 주장하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경찰의 수사권 독립은 국가소추기관으로 설치한 검찰제도 자체를 부정, 형사소송구조의 근간을 붕괴시킨다는 게 첫째다.

즉 경찰이 죄가 있다고 판단한 사건만 재판에 회부한다면 이는 '빈껍데기 검사' 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검찰은 "수사 자체가 범죄자의 처벌을 위한 재판회부의 준비행위에 해당되는 만큼 범죄 발생 즉시부터 수사를 지휘하는 것이 합리적" 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둘째로 경찰의 불법수사.증거채택 거부 등을 감시하는 게 검찰의 주요 임무인데도 이를 인정치 않게 되면 경찰의 권력남용에 대한 견제장치를 잃게 된다고 검찰은 주장하고 있다.

사건은폐.편파수사 등 그간의 경찰 비리를 겪어온 국민이 수사권 독립을 반대할 게 뻔하다는 것이다.

"외국의 경우 수사권의 상당 부분이 경찰로 넘어가 있다" 는 주장에 대해서도 검찰은 조목조목 반박했다.

예컨대 검사의 권한이 막강한 유럽국가들은 물론 일본의 경우도 수사 초동단계에 필요한 체포.압수.수색.검증 영장은 경찰에 있으나 나머지 영장청구권은 검찰에 있다는 것. 또 일본에서도 모든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는 게 원칙이며 수사종결권도 일본 경찰엔 없다는 게 검찰측 주장이다.

검찰과 경찰 관계도 상명하복 (上命下服) 이 국제적 표준임을 애써 부각시켰다.

검찰은 "프랑스의 경우 법무부에 경찰관 임명 및 징계권까지 있으며 경찰의 권한이 강하다는 일본에서도 검사의 지시를 어기면 징계는 물론 파면까지 가능토록 규정돼 있다" 고 주장했다.

남정호 기자

경찰은 자치경찰제와 수사권 독립.정치적 중립 문제는 따로 떼놓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수사권 독립에 대해 정치권에서 큰 거부감을 보이지 않을 것으로 보고 적극적인 공세를 취하고 있다.

경찰은 전면적인 수사권 이양이 아니라 현실화를 요구한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경찰청 시안은 영장청구 때는 반드시 검사를 거치도록 하되 불구속 사안은 경찰의 권한으로 하자는 게 골자다.

즉 인신 체포 또는 구속과 관련된 범죄에 대해선 검사의 지휘를 받겠다는 것이다.

또 불구속 사안도 송치 뒤 검사가 구속사유로 판단하면 지휘를 받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한 논리로 연평균 1백50여만건에 이르는 범죄의 96.7%를 경찰이 처리하고 있지만 '현행법상 경찰이 하는 수사는 모두 위법' 이라는 점을 든다.

형사소송법상 경찰은 시종일관 검사의 지휘를 받아서만 수사할 수 있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소수의 검사가 모든 사건을 지휘하기 어려워 대부분 수사지휘는 경찰 간부가 하는 실정" 이라며 "이를 현실에 맞게 고치자는 것" 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지휘체계 속에선 경찰서에서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사건도 검사의 판단과 검토를 거쳐야 해 결국 국민의 시간을 빼앗고 막대한 경제적 손실마저 초래한다는 것이다.

인권침해 우려가 있다는 검찰의 지적에 대해서도 "일반사건은 물론 각종 공안사건의 수사를 지휘하는 등 검찰이 비대해진 상황에서 검찰이 저지르는 인권침해는 누가 수사하느냐" 고 반문한다.

즉 수사권을 가진 검찰이 자체 무혐의 처리해 버리면 그만이란 얘기다.

수사기관의 인권침해는 시민단체와 언론 등 국민의 감시와 비판 기능을 바탕으로 없애야 하는 것이므로 시민에게 노출된 경찰은 오히려 인권침해 소지가 적다는 입장이다.

또 수사경찰의 자질 부족 우려에 대해서도 경찰은 "그동안 고시 특채.경찰대생.법대 졸업생.간부후보생 등 고급인력 3천3백여명을 확보했고 95년부터 조사요원 간부화와 연수를 지속적으로 실시해 큰 문제가 없다" 고 반박한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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