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의 가려진 삶 진지한 추적-6일부터 '나운규' 공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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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요절.여성편력.광기.가난.넘치는 에너지…. 천재의 조건을 두루 갖추었던 인물 춘사 나운규 (1902~1937) .그 명성에 눌려 오히려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삶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 한편이 무대에 오른다.

'덕혜옹주' '나, 김수임' 의 작가 정복근과 연출가 한태숙 콤비가 극단 '물리' 의 창단공연으로 빚어내는 '나.운.규' .

나운규라는 이름은 곧 한국 최초 장편 극영화인 그의 연출.주연작 '아리랑' 을 떠올리게 하지만 정작 이 작품은 영화 '아리랑' 에 대해서 신화화는커녕, 설명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운규가 정말 '아리랑' 을 감독했을까 하는 물음으로 시작한다. 해명을 위한 물음에 지나지 않지만 기억 저편 나운규를 오늘날의 인물로 환생시키는 장치인 셈이다.

과거의 나운규 (강신일 분) 를 현실로 끌어내는 역할은 가상의 인물 박신 (이용구) 이 맡는다. 나운규의 평생 지기였던 윤봉춘 (한명구) 을 찾아가 이런 질문을 던지자 윤봉춘은 과거와 현실을 오가며 나운규와 그들 사이의 우정을 회상한다.

조강지처 (예수정) 를 팽개치고 윤마리아 (김호정) 와 무책임한 사랑놀음을 벌이는 나운규, 그리고 언제나 묵묵히 그의 곁에서 예술적 고뇌를 함께 했던 윤봉춘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나운규의 일생을 평면적으로 다루거나 그의 업적을 열거하는데 그치지는 않는다. 나운규의 곁에서 천재의 비범함에 소외감도 느끼는 윤봉춘과의 대화를 통해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예술의 의미를 말하고 있다.

영화 '아리랑' 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서양영화를 모방했다는 당시 신문의 비판에 춘사는 "외국영화 흉내 많이 냈습니다. …베끼건 흉내를 내건 아무튼 재미있게 만들어야지요. 영화는 가장 대중적인 오락이니까요. " 라고 태연히 답한다.

천재로만 포장돼온 춘사를 현실과 타협하는 한 사람의 예술가로 바라보는 것이다. 작가는 기록자 윤봉춘의 입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쏟아낸다.

"언제까지 그 쓸데없는 관객, 신문기자, 평론가 눈치만 보고 살거냐?

우린 예술가야. 굶어도 뜻을 심는 일을 해야지 이게 무슨 보람이냐?

변덕스러운 대중은 믿을게 없다. 우린 우리 길을 가야 해. " '근본을 다루면 촌스럽고 감각을 다루면 천박하다' 는 70여년동안 변하지 않는 반응에 답답해 하는 작가는 메시지는 분명히 전달하고 있지만 정작 인간 나운규의 모습은 관객에게 잘 드러나지 않는다.

윤마리아의 캐릭터는 운명적인 사랑을 말하기에는 모자라고 춘사의 여성편력 설명을 위한 장치로는 분에 넘친다. 이런 어정쩡한 극중인물 묘사가 극의 집중도를 떨어뜨려 아쉽다. 5월 6~23일 문예회관 소극장. 02 - 737 - 2723.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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