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출소 비전향장기수 4명 중고품점 개업 '홀로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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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할아버지 책값 여기 있어요. " "어이구 젊은이 이건 너무 많아요. 2천원만 내면돼요…. " 29일 오전 11시50분, 경기도과천시별양동 서울호프호텔 2층 한백만물상. 30년 이상 복역하다 풀려난 비전향 장기수들이 자활을 위한 첫발을 내디딘 현장이다.

지난 2월 출소한 김은환 (金殷煥.70) 안영기 (安榮基.71) 씨와 지난 93년 풀려난 홍문거 (洪文巨.80) 장호 (張虎.81) 씨. 두칸짜리 지하셋방에 함께 사는 이들은 스스로 벌어먹고 사는 '세상살이' 에 적응하기 위해 지난 28일 가게를 냈다.

한백이란 상호는 '한라에서 백두까지' 란 뜻이다.

13평짜리를 점포를 2칸으로 나눠 한쪽엔 헌책, 다른쪽엔 헌옷 매장을 꾸몄다. "아무리 세상을 둘러봐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고 털어놓는 이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빨갱이" 라는 차가운 시선과 형사들의 '보안관찰' 이다.

김은환씨는 "우리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통일주의자요. 이러한 소신으로 평생을 살아왔고 남은 생도 별 수 없이 그러겠지요" 라고 말했다.

이들의 꿈은 돈을 벌어 분단의 희생양이 된 기지촌 주변 불우아동들을 모아 손자처럼 키우는 것이다.

정찬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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