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모 방송 뒤로 하고 9집 안고 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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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연예인이 TV에 얼마간 안 나올 때 대중의 반응은 두가지다. 잊거나, 그리워하거나. 지난 7월 방송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공식 선언한 가수 김건모(36)는 아무래도 후자가 아닐까. 단지 그의 노래와 입담이 그리워서만은 아니다. 음반 시장이 하루가 멀다하고 죽어가는 요즘인지라 김건모가 시원하게 홈런을 날려주길 기대하는 것이기도 하다. 9집 발매를 앞둔 김건모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김건모는 "그냥 제 얘기예요"라는 한 마디로 앨범을 설명했다.

김건모 노래의 매력 포인트인 솔직한 가사는 그대로지만 전작보다 진지해졌다. '밥 한 번 못 사주고 옷 한 벌 못 해줘' 미안하다던(미안해요) 그는 9집 타이틀 '잔소리'에서 '우리의 만남이 오래되어 숨소리도 듣기 싫을 때/우리 처음 만난 그 때를 다시 생각해봐요/지겹던 너의 잔소리가 오늘밤 너무 그리워'라 노래한다. 그러나 뒤이어 '모두들 웰빙 열풍 몸짱인데 나 홀로 배만 나와 배짱이네/누가 나를 제발 사가요/말만 잘하면 다 공짜야(경매)'라라며 너스레를 떤다. 울다가 웃게 만드는 김건모표 익살은 여전하다.

보사노바 리듬을 가져온 '사랑이 날 슬프게 할 때', 재즈 느낌을 살린 '가족' 등 9집은 음악적으로도 한층 풍성해졌다. 가장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는 노래 중 하나는 '사랑과 평화'의 1979년작 '장미' 리메이크. 이전보다 더 허스키하고 굵어진 김건모 음색의 매력에 흠뻑 빠질 만한 곡이다. 9집 수록곡 중 김건모가 가장 좋아한다는 '흐르는 강물처럼'은 감성을 자극하는 발라드다.

"앨범이 몇 장 팔릴지에 대한 집착은 버렸어요. '잘못된 만남'이야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 나왔으니 좋았던거죠. 저는 정상까지 가봤으니 이제 착륙을 얼마나 잘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가 택한 연착륙 방법은 공연이다. 대신 방송을 포기했다. 공연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김건모는 올해 안에 전국 15개 도시를 돌며 30회쯤 콘서트를 할 계획이다. 다음달 10~12일 올림픽 공원 역도경기장에서 열리는 9집 발매 기념 '2004 김건모 라이브리그 콘서트(02-522-9933)'로 첫 테이프를 끊는다. 앨범 발매와 동시에 콘서트를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인지라 그도 약간 긴장한 모습이다.

"저야 수십번 공연하는 거지만 관객에겐 딱 한번이잖아요. 어떤 공연이라도 소홀히 할 수 없죠." 데뷔 12년 만에 방향을 튼 대형 가수 김건모가 매끄럽게 새 길을 갈 수 있을까. 이제 대중의 손에 달렸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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