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유종근지사의 처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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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공직자 집 전문털이 사건 피해자인 유종근 (柳鍾根) 전북지사측이 검찰의 현장검증을 앞두고 범행장소인 지사사택의 집기를 치우고 폐쇄해버린 것은 절도사건과는 차원이 다른 또하나의 '사건' 이다.

피해자로서 검찰 수사과정에 불평.불만을 나타낼 수는 있지만 국민적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인 데다 한창 수사가 진행 중인 상태에서 서둘러 현장을 없애버린 것은 오히려 의혹을 증폭시킬 우려가 있다.

柳지사는 "절도범의 근거없는 일방적인 주장만 갖고 정치공세와 여론재판이 자행되고 있다" 고 말하고 있다.

또 어제 기자회견에서는 이 사건이 야당의 터무니없는 정치공세라며 "국민이 심판하고 책임을 물어달라" 고 주장하기도 했다.

물론 柳지사측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절도범이 전과가 많은 데다 히로뽕 양성반응을 보이는 등 진술에 신빙성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또 범인검거 후 40여일이 지났고 송치되고 한달이 넘었는데도 아직 수사가 현장검증 단계에 머물고 있다는 것은 검찰의 잘못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이 계속 들먹여지는 데 따른 피해자로서의 고통이나 괴로움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현 정부의 실세 중 한사람으로 손꼽히는 柳지사가 검찰수사를 '정치적 음모' 라고 주장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렵다.

특히 피해품 중 12만달러의 유무 (有無) 를 둘러싸고 피해자와 절도범 사이에 상반된 주장이 나오는 상황이다.

柳지사측이 인정한 현금 피해액 3천5백만원에 대해서도 절도범은 3천2백만원이라고 진술하고 있다.

또 비록 피해품이라고는 하지만 공직자가 사택에 수천만원의 현금뭉치를 보관하고 있었다는 점도 국민들은 의아해 하는 게 현실이다.

이처럼 아직 사실부분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면 우선 실체적 진실을 밝힌다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피해자라고 하더라도 일방적으로 범행현장을 훼손한 것은 증거인멸 또는 수사방해라는 오해를 부를 수도 있다.

특히 의혹부분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의 이같은 처사는 어떠한 설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누구보다도 수사에 협조해야 할 위치에 있는 고위 공직자의 이같은 처신이 불신과 의혹을 가중시키지 않을까 우리는 우려한다.

검찰은 사건의 진실을 빠짐없이 규명해야 한다.

柳지사 사택에 12만달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3천만원이 넘는 현금뭉치가 어떤 곳에 어떤 모습으로 보관되고 있었는지, 출처는 어디고 어디에 쓰려는 돈이었는지를 소상하게 밝혀 국민들이 갖고 있는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개적인 현장검증이 불가피하다.

柳지사측이 하루 빨리 범행현장을 원상회복시켜 수사에 협조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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